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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인 탐구] 설계자 크렌쇼 & 쿠어
뉴스| 2020-04-1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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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렌쇼와 쿠어가 캐나다에 만든 캐봇 클리프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빌 쿠어(Bill Coore)와 벤 크렌쇼(Ben Daniel Crenshaw)는 오늘날 골프계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코스 설계가 듀오다.

크랜쇼는 ‘명인열전’으로 불리는 마스터스에서 두 번 우승한 프로 골퍼로 골프 역사상 손꼽히는 퍼트 실력을 가진 선수 출신이고, 쿠어는 전문 설계 공학도 출신이다. 미국 골프의 골든 시대인 1920~30년대의 클래식 코스의 재구현을 이상으로 삼는 쿠어와 선수 출신의 크렌쇼가 의기투합해 1986년에 만든 회사가 쿠어&크렌쇼다.

두 사람은 알리스터 매킨지, 도널드 로스, C.B. 맥도널드, 페리 맥스웰, A.W. 틸링하스트 등 미국의 전설적인 설계가들이 만든 코스를 모델로 삼고서 그들만의 독창성을 가미하려 했다. 크고 불규칙적이며 들쭉날쭉한 벙커 스타일은 알리스터 매킨지에게서 따고, 그린 조성은 도널드 로스를 따르지만, 그 외 세부 조성 과정에는 첨단 코스 조성 트렌드를 반영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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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라스카 사막지대에 조성한 쿠어&크렌쇼의 대표작 샌드힐스.


미니멀리스트와 전통주의자
1946년 노스캐롤라이나 데이비슨카운티에서 태어난 빌 쿠어는 도널드 로스의 대표작인 파인허스트와 페리 맥스웰의 올드타운클럽에서 골프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8년 웨이크포레스트대학을 졸업한 뒤 1972년부터 10여년 간 피트 다이 밑에서 코스 설계 실무를 배웠고 그 사이 플로리다, 버지니아, 캐나다, 텍사스 등에서 다양한 코스 조성에 참여했다.

1982년 독립한 쿠어는 텍사스에 락포트 컨트리클럽을 첫 작품으로 냈다. 그는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 코스 설계가로 손꼽힌다. 좋은 부지를 선정해 루트 플랜을 짜고 공사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되, 자연이 주는 골프의 재미와 스릴을 최대한 끌어내는 전문가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업계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빛내줄 파트너를 찾은 게 바로 크렌쇼였다.

1952년 텍사스 출신인 벤 크렌쇼는 미국PGA투어에서 19승을 거두고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1984, 95년 두 번 우승한 백전노장이다. 단정하고 멋진 경기 운영으로 인해 별명이 ‘젠틀 밴’일 정도였다.

오스틴고등학교에서 골프를 시작해 대학 리그에서 3승을 거둔 크렌쇼는 73년 프로 데뷔했다. 데뷔 첫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라이더컵의 미국 팀 단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퍼팅 감각을 가진 선수로 여겨지는 그는 이후로도 챔피언스투어에 진출해 꾸준히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설계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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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해안선을 따라 조성한 프라이어스 헤드.


크렌쇼는 ‘코스의 전통주의자’로 불린다. 16세 때 부르클라인의 더컨트리클럽을 본 뒤로 코스 설계에 매료됐다. 수많은 대회에 출전하면서 미세한 그린 주변 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그는 새로운 코스를 만들면서 그 요소를 접목시키려 했다.

미니멀리스트인 쿠어와 전통주의자인 크렌쇼가 의기투합해 쿠어&크렌쇼를 차린 건 크렌쇼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2년 뒤인 86년이다. 호흡은 서로 잘 맞았다. 빌이 공사를 맡아 코스의 틀을 잡아나가면 벤은 그걸 실제 플레이어 차원에서 즐기는 방법과 디테일을 강조한다. 둘이 합작하면서 뛰어난 작품이 다수 만들어졌다.

이들은 US오픈을 앞두고 노스캐롤라이나의 파인허스트 2번 코스를 성공적으로 리노베이션해 명성을 다시 확인했다. 맨땅을 살려 도널드 로스 시절의 코스 원형으로 복귀했다. 그들이 바꿔놓은 파인허스트는 물 사용량을 극도로 줄인 미래형 코스다.

티잉그라운드, 페어웨이, 그린 등 꼭 필요한 곳만 물을 주고 나머지는 맨땅으로 남겼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안티-오거스타의 선봉에 섰다’고 평가했다. 잘 관리된 코스보다는 여기저기 거칠고 성긴 땅이 보이는 것이 보다 환경 친화적이며 미래 코스가 가야할 방향이란 것이다.

미국 100대 코스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샌드힐스는 네브라스카 물란의 외딴 초지 한 가운데 조성된 진정한 내륙 링크스로 각광받는다. 파71의 7089야드 이 코스는 너른 평야 사방에 마치 골프장만 펼쳐진 코스를 만들었다. 2002년에는 뉴욕주 베이팅 할로우의 해안가에 프라이어스헤드를 만들어 골퍼들의 각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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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크렌쇼, 빌 쿠어의 대표 코스들과 순위.


미래 코스의 방향을 제시하다
밴든듄스의 개발자인 마이클 카이저와 만나면서 이들의 자연 친화적인 코스 성향은 그야말로 꽃을 폈다. 카이저는 천혜의 골프장 부지를 사들여 설계가에게 코스 설계와 공사를 일임하는 개발업자였다. 그 덕에 설계가들의 독창성이 최대한 발휘되고 뛰어난 작품이 연달아 나올 수 있었다.

쿠어& 크렌쇼 듀오는 카이저가 오리건에 조성한 벤든듄스에 벤든트레일스를 조성한 뒤 2012년에는 파3 홀 13개로 만든 벤든 프리저브까지 추가로 설계했다. 최근에 이들이 낸 작품은 플로리다의 스트림송 레드 코스다. 카이저가 부지를 사들이고 이들이 설계한 가장 최근 작품인 2017년 개장한 캐나다의 캐봇클리프스는 올해 <골프다이제스트>의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 랭킹 11위에 들었다.

둘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해외에서 만든 코스 또한 명품으로 꼽힌다. 호주에서는 태즈매니아의 반부글로스트팜, 중국에선 2015년에 하이난에 조성한 샹킹베이가 이들의 작품이다. 벌써 30여개의 코스를 합작했고, 만드는 코스마다 칭송을 받으니 이들은 골프장의 미래를 만드는 예술가인 셈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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