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수년전부터 위작 논란…이우환은 왜 모두 진품이라고 말했을까
라이프| 2015-10-22 07:51
-위작 수백점 제조ㆍ유통…경찰, 인사동 화랑 압수수색
-“대형 갤러리도 유통에 관여 가능성…위작으로 수백억 이득”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터질 것이 터졌다. 이우환 위작 논란이다.

이우환 화백의 가짜 작품이 떠돈다는 소문은 이미 2~3년 전부터 미술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올해 베이징아트페어 등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이우환 위작이 유통되는 걸 봤다는 화랑 관계자 다수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술계에서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한 무더기’의 이우환 위작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14년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당시 이우환 화백. 이 화백은 1970년대 단색화 사조가 당시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항하는 ‘침묵의 저항’이었다고 말해 분분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결국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지난 6월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위조하고 유통시킨 혐의로 관계자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4개월 후인 16일, 인사동 한 화랑을 압수수색 했다.

경찰 수사로 이어지게 된 건 위작과 유통에 관여했던 이들이 이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으면서 투서에 나섰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영원한 비밀이 될 수 없는 커넥션이었던 것.

사실 사건이 수면 위로 불거질 조짐은 이미 올해 초부터 감지됐다. 국내ㆍ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이우환 잭팟’ 소식이 뜸해진 것. 10월 초 김환기 화백의 점화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 작가 최고가 기록은 이우환 화백이 갖고 있었다. 지난해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도 이우환의 주홍색 ‘선으로부터(1975)’다. 특히 지난해 11월 소더비 뉴욕경매에서는 1976년작 ‘선으로부터’가 216만5000달러(23억7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이우환 화백의 경매 신기록 소식이 사그라든 건 올해 초부터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우환은 단색화 주요 작가(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했다. 낙찰총액(7~9월) 기준으로도 이 화백(8억9850만원)은 정상화 화백(11억1920만원)에게 밀렸다. 위작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 게다가 지난해 이 화백이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그림에는 한 점도 가짜가 없었다”고 말한 것이 위작 유통을 더욱 부추긴 꼴이 됐다.

미술계 한 인사는 “올해 국내 작가 최고가 기록이 이우환 작품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았지만, (단색화 작가인) 정상화, 박서보에도 밀리게 된 이유는 위작 소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미술계 위작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을 천 화백이 직접 제기해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2005년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은 미술계가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과거 위작 논란이 작품 1점, 내지는 수십점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수십점 많게는 수백점 넘게 대규모로 위작이 유통됐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위작 유통에 대형 갤러리가 연관됐을 가능성이다. 어쩌다 한 두점 모르고 유통했을 수도 있지만, 위작인 걸 알고서도 취급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느 갤러리가 이우환 위작으로 수백억을 벌었다는 소문도 이미 시장엔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금전 거래 내역 등 경찰 수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번에 위작 논란이 제기된 이우환의 작품들은 대부분 1977년~1979년 선(From Line) 시리즈와 점(From Point) 시리즈에 치중돼 있다. 이우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 화백은 “내 작품은 내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 때문에 모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흉내내기도 쉽고 진위 구별도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화랑 관계자는 “미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위작하기 어렵지 않다”면서 “몇 십년 세월이 지나면 시간의 흔적이 작품에 그대로 남기 마련인데, 가짜 작품은 캔버스가 쌩쌩하다던지 억지로 시간의 흔적을 만들어 내려고 한 게 전문가들 눈에는 쉽게 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이 화백은 모두 진품이라고 말했을까.

이 화랑 관계자는 “이 화백이 가짜가 없었다고 말할 때 ‘내가 본 작품 중에는’이라는 전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논란을 덮으려고 하는 듯한 인상이 있었다. 그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술계에서는 차라리 잘 됐다는 반응이다.

한 전문가는 “시간이 문제였지 언젠가는 밝혀질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빨리 문제점을 알고 환부를 도려내는 게 이우환을 살리는 일이다. 그래야 작품도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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