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알바의 눈물 ①] "경력 없다고?…안됩니다"
뉴스종합| 2016-04-25 10:01
-정규직 취업난 속 ‘알바’도 취업난에 허덕대
-알바 하려는 이 많다보니 경력 알바만 선호
-그러다보니 알바 후 원하는 일 취직 패턴 붕괴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1. 서울 종로구에 사는 대학원생 이광호(27) 씨는 적은 돈이라도 학비에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 자리를 찾아 나섰다. 이 씨는 출근 시간을 아끼고자 동네 근처에 있는 카페 위주로 알바 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4~5곳에 이르는 카페는 모두 경력 알바생만 원했고 이 씨에겐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이 씨는 결국 ‘알바 경력’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각종 구직 사이트에 게시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단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 캡쳐]
각종 구직 사이트에 게시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단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 캡쳐]

#2. 경북 경산시에 사는 취업준비생 신모(26) 씨는 취업이 좌절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시 알바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 씨는 하루 단위로 일하는 ‘단기 알바’를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 신씨가 최근 두달 동안 했던 단기 알바만 해도 초등학교 과학 경시대회 진행요원, 방송국 촬영 보조요원 등 4가지나 된다. 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서빙 알바로 돈을 벌려 했던 신 씨는 ‘6개월 이상’ 일을 해야 뽑아준다는 업체 조건에 매번 고배를 마셨다. 취업 준비를 계속해야 하는 신씨 입장에선 6개월 이상의 한 알바를 약속할 수 없었다.

청년 정규직 취업난이 ‘알바 취업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규직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이 알바 취업시장에 계속 머물고 있는 결과다.

각종 구직 사이트에 게시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단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 캡쳐]
각종 구직 사이트에 게시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단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경력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 캡쳐]

알바 구직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20대 알바 구직자 수는 21만2250명에서 2014년 54만7955명으로 늘었다. 경력직 알바만 뽑는다는 공고도 지난 2010년 11만6745건에서 2014년 22만9907건으로 늘었다. 전체 알바 공고 증가수에 대비한 비중으로 보더라도 더 빠르게 늘어난 숫자다. 취업정보 전문업체인 커리어 또한 작년 6월 알바 구직자 86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90%가 알바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중 가장 많은 36.11%는 ‘관련 경험 부족’을 어려웠던 이유로 꼽았다.

경력을 요구하는 알바 중에선 단순 노동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인천 중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2) 씨는 “카페 서빙 일과 음료를 만들 알바로 1년 정도의 경력자를 구하는 중”이라며 “(쉬운 일이라도)알바생이 어린데다 경력도 없으면 직업의식이 떨어져 업주가 불편하다”고 했다.

경기 용인시의 편의점 점장으로 있는 조모(45) 씨는 주중 오후 매장관리 알바로 경력직을 구한다. 조 씨는 “처음부터 가르치려면 5시간 이상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사이 다 배운다는 보장도 없다”며 “예전보다 경력직으로 지원하는 20대가 많이 늘어 알바생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알바생이 울고 있다. 정규직 취업난이 심해 이들이 알바에 머물다보니, 알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 경력있는 알바를 원하는 곳이 다수여서 초보자의 알바 진입도 쉽지 않다. 사진은 경력직 알바 공고 및 알바 관련 이미지.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알바 경력 없는 청년들에겐 일명 ‘단기 알바’가 인기다. 기간이 짧고 하는 일도 비교적 단순해 상대적으로 경력과 기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알바 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의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연간 공고 1건당 온라인 입사지원자 수는 단기 행사 진행요원이 약 25.7명이 지원하며 알바 경쟁률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2015년 12월 겨울방학 인기 직종으로도 행사 진행요원은 경쟁률 20.2명으로 1위를 지켰다.

문제는 인기보다 부족한 단기 알바 일자리 갯수다. 알바몬의 추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체 아르바이트 구인 280만5741건 중 6개월 이상 근무조건의 게시글은 132만3915건으로 47.2% 비중을 차지했으나 1주일 이하 근무조건의 구인은 10만3733건으로 3.6% 밖에 되지 않았다. 2015년엔 6개월 이상 근무조건의 구인이 전체 618만4220건 중 331만3428건으로 3년간 비중이 53.6%로 올랐으나 1주일 이하 근무조건의 게시글은 22만43건으로 여전히 3.6% 비중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높은 인기에 비해 일자리 수의 비중은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20대가 알바 일을 일정 기간 하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옮기는 환경이 지금보다 수월했다”며 “알바에서도 경력직만 요구하는 현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알바시장의 초과공급이 일어난 결과로 보인다”고 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경력을 만들기 위해선 ‘열정페이’ 같은 저임금 노동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된다”며 “이를 버틸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청년만 결국 일할 수 있게 되니 결과적으로 사회 불평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 1만원 등의 구체적 대책으로 알바와 중소기업 등의 근무조건을 완화하는 게 악순환을 끊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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