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욱! 엄마가 무서워요
뉴스종합| 2016-04-27 11:55
남편도 자식도 싫어 시도때도 없이 분노…
남편전화 왔는데 휴대폰엔 송중기 얼굴이…

5060여성 우울증 4년새 10% 
화병 중년여성도 급증추세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회의감
자녀 분가후 공허감 禍로 분출



#1. 50대 주부 김모 씨는 최근 스마트폰의 남편 연락처에 남편 얼굴 대신 ‘태양의 후예’ 남자 주인공인 배우 송중기 얼굴을 저장했다. 집안 일을 하다가 남편 얼굴이 뜨면서 전화가 오면 이유없이 짜증이 났기 때문. 남편이 집에 들어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을 보면 ‘욱’ 하기도 했다. 실제 얼마전 이유없이 남편을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러다가는 부부 관계에 큰일이 나겠다 싶었다.

#2. 50대 초반의 직장인 이모 씨는 최근 아내가 보인 뜻밖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최근 아들이 대학 입학 수시에 떨어져 부부가 낙담해 있던 상황. 마침 친구가 입시 컨설턴트라 상의도 할 겸 술 한잔하고 돌아와 드라마를 혼자 보고있는 아내에게 아들 입시 얘기 좀 하자고 채근하자 아내가 버럭 화를 내며 TV 리모콘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 씨는 “생전 처음 보는 아내의 폭력적인 모습에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순간적으로 욱(?)하는 중년 여성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50~60대 여성의 우울증이나 화병 진단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1년 15만2000여건 수준이었던 50~60대 여성의 우울증 판정사례는 4년새 16만5000여건으로 10%가량 늘었다. 같은 나이층의 남성이 우울증으로 판정 받는 경우가 7만여건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중년 여성들의 정신적 불안감은 남성의 그것을 압도한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통사회때부터 ‘화병’으로 불려온 정신질환 역시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질병이긴하지만 질병코드도 있는 엄연한 질환”이라며 “최근 몇년 새 화병으로 진단을 받는 환자가 50~60대 중년 여성 사이에서 크게 늘어나는 흐름”이라고 했다.

중년 여성들이 유독 남성에 비해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을 억누르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때문이다. 갱년기 이후 남편과 자식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불같이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11면 


윤 교수는 “현재 중년을 맞은 50~60대 여성들의 경우 남편들의 도움 없이 가사를 전담하면서 자식들을 키워 분가시켰다”며 “자녀를 분가시킨 이후 공허함에 그동안 쌓인 화가 병이 돼 폭발하게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경제 생활을 도맡고 여성은 집안일을 책임지는데 익숙했던 가부장적 문화에서 남성은 50대 이후에 경제적 지위도 높아지고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비해 하루하루 반복되는 가사일에 매몰된 여성의 경우 상실감이 커지면서 화만 키운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특히 이씨 부부의 사례처럼 가족 내에 큰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하면 뇌가 이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는데 한계를 느껴 작은 자극에도 강한 분노 반응이 치솟을 수 있다”고 했다.

갱년기 이후 여성호르몬이 약화되고, 남성적 호르몬이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것도 한 원인이다.

한 정신과 의사는 “젊었을때부터 남편이 술을 많이 먹고 바람도 피웠는데, 자식들이 둥지를 떠난 후에도 여전하자 그동안 쌓인 게 화병이 됐다는 60대 여성환자가 얼마전 찾아왔다”며 “남편의 뒤통수만 봐도 징그럽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며, 불같이 화를 내면서 때론 폭력적으로 변하는 본인의 모습에 너무 놀라 상담하러 왔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함께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 있을 때는 한 일주일 정도는 자기 방식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자유라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욱(?)하는 중년여성 위기를 넘기 위해선 가족의 배려가정답이라는 것이다.

김태열ㆍ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