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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정치] 비박계의 ‘조건부 정치’와 ‘양다리’ 의 함정
뉴스종합| 2016-12-04 08:08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계가 국민 앞에 ‘신종(新種) 정치’를 선보였다. 이른바 ‘조건부 정치’다. 당 쇄신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추진 과정의 고비 고비마다 비박계는 모든 말머리에 단서를 붙였다.

‘이정현 지도부가 먼저 사퇴하지 않으면’ 즉시 당 해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이정현 대표가 비대위원장 수용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하고, ‘야당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탄핵안 찬성 표결에 동참하겠다고 했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자진사퇴 의지를 밝히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식이다.

그렇게 김용태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탈당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났고, 박 대통령 탄핵안은 결국 ‘2일 처리’에서 ‘9일 처리’로 일주일이 연기됐다. 좋게 보면 운신의 폭을 넓히는 ‘가능성의 정치’이지만, 나쁘게 보면 늘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두고 입장을 조금씩 바꾸는 권모술수다.


비박계의 이 같은 행보는 유례없는 탄핵 정국 아래서 청와대와 친박(親박근혜)계, 야권이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정치적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0만명에 가까운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 분출한 ‘분노’를 피하면서도, 대구ㆍ경북(TK) 지역 등 ‘텃밭’의 보수 표심을 지키려는 노력도 감지된다. ‘4월 퇴진, 개헌, 6월 대선’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다소 애매해 보일지라도 다방면으로의 길을 열어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 역시 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소신’을 갈구하는 가운데, 비박계가 선보이는 조건부 정치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다. 이미 지난 3일 열린 제3차 촛불 집회에서도 국민의 요구가 ‘즉시 탄핵’을 향하고 있음은 여실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의 ‘질서있는 4월 퇴진’을 요구하는 측에서도 ‘여차하면 탄핵안 찬성 표결에 동참하겠다’며 오락가락하는 비박계를 좋게 볼 리가 없다.

비박계가 정녕 ‘박 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대선이 대한민국을 위해 가장 좋은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집권 여당의 소속원으로서 배수의 진을 치고 강력하게 여야 협상을 요구하면 그만이다. ‘만약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탄핵안 표결에 동참할 의지는 있지만, 협상이 먼저이기는 한데, 박 대통령이 사퇴 시기를 스스로 밝히면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다’는 식의 태도로 민의를 더욱 성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한 명 한 명이 모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이미 실정법을 무수히 위반한 박 대통령의 거취를 법적으로 처리하겠다(탄핵)는 의지가 있다면, 탄핵에 나선 뒤 이후 국정 수습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편이 안개속에 갇힌 정국의 향방을 훨씬 명확하게 한다. 비박계가 조건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양다리 정치’가 아닌 ‘소신’을 보여줄 때가 된 이유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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