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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 행정 각료의 출신 배경
뉴스종합| 2017-01-23 11:17
미국 역사에서 지난번 대선처럼 논란이 많았던 경우도 드물 것이다. 트럼프 후보의 ‘튀는’ 개성에 더해, 레이건 행정부 이후 점점 더 심해진 이념적 양극화 때문이다. 8년 임기 마지막까지 높은 국민적 지지를 얻은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그의 최대 실책은 정권재창출 실패로 인한 후임 정부의 정책 뒤집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지난 20일 트럼프 제45대 대통령의 취임으로, 이제 그가 임명하는 각료들과 그에 따라 예상되는 정책정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내각의 특징 중 하나는 기업인 출신이 많은 점이다. 20명 각료 가운데 5명이 기업인 출신이니, 2명에 불과했던 오바마 행정부보다 2배 이상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공직에 기업인들을 중용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장차관 같은 정무직뿐만 아니라, 19C말까지는 행정직에도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많이 진출했다. 이는 시장경제와 기업가정신에 대한 미국인들의 높은 신뢰를 반영한다. 19C말 이후 ‘진보주의’ 시대에 유럽식 실적주의 공무원제를 도입했지만, 이는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일 뿐, 공·사 조직 경력을 차별하는 관념은 아니다. 대신에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방지하는 엄격한 제도화가 이뤄졌다. 20C중반 이후 진보주의가 확대되면서 소수자 우대와 다양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더해지면서 대학교수나 싱크탱크 연구원들의 공직진출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C 첫 대통령인 부시의 행정부도 각료의 절반 이상(12명)이 기업인 출신이었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 공직인사는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가 지배적이다.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직업공무원제는 유능하고 젊은 인재들을 뽑아 행정전문가로 양성한다는 원리에 근거한다. 역대 행정부에서 장차관은 (행정·사법·군대 등) 직업관료 출신(평균 약 65%)과 외부전문가(약 15%)로 꾸려졌다.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도 관료(55% 이상)와 외부전문가(30% 이상) 중심으로 구성됐다. 반면에 정치인 출신의 비중은 장차관(평균 약 18%)과 대통령비서관(약 9%) 모두 낮다. 외부전문가는 대개 학자들과 초기에 일부 은행원 등이 대부분이고, 기업인은 극히 드물다.

한국의 학자 중시 경향은 조선시대 유자관료(儒者官僚), 기업인 출신의 낮은 비중은 상공업 천시의 문화적 유산이 각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각제였던 장면 행정부 외에, 정치인의 비중이 낮은 이유는 정치인에 대한 국민과 대통령 스스로의 불신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관료와 학자 등 전문가의 비중이 높은 행정부는 장기적이고 기획합리성(plan rationality)이 높은 정책정향을 보이는 반면, 정치인의 비중이 높은 행정부는 단기적으로 대응적이며 정치합리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기획합리성이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경우, 각료의 대부분이 정치인이지만, 이들의 다수가 전직 관료들이다. ‘탄핵 정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행정부 고위직들의 비리를 보면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했음에 아연실색이다.

미국에서 각료 임명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그들이 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의 여간한 ‘측근’이 아니고서는 청와대 수석들의 전횡에 휘둘리다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일수록 비서실로 의사결정을 집중시킨다. 박 행정부는 비서실조차 소외시키면서 ‘비선’에 배타적으로 의존한 경우다.

앞으로 청와대 비서실을 대폭 축소하고, 대통령이 장차관들과 직접 국정을 논하는 ‘내각정부(cabinet government)’를 구현해야겠다.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한 장차관들의 능력을 굳이 믿지 못하겠다면, 그가 수석비서관 ‘감’으로 여기는 인사들을 각료로 임명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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