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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선고’ 한진 해운, 역사 속으로 침몰…숫자로 본 영욕의 40년
뉴스종합| 2017-02-17 10:04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40년간 전 세계 바다를 누비던 한진해운이 17일 마침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침몰했다. 국내 해운업계 1위 선사이자 세계 7위의 대형 선사는 해운산업에 대한 정부 및 금융권의 무지, 전문성이 의심되는 오너 경영 등의 문제에 떠밀려 힘없이 가라앉았다.

한진해운은 지난 1977년 ‘수송보국’을 꿈꿨던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에 의해 탄생했다.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출범한 이후 북미서안항로, 북미동안항로 등을 차례로 개척했고, 1988년 대한해운공사가 전신인 ‘대한선주’를 합병하며 한국 컨테이너 해운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무섭게 사세를 확장한 한진해운은 1992년 12월 국내 선사 최초 매출 1조원을 달성했고 1997년에는 세계 7위 선사로 자리매김 했다.

한진해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조중훈 회장이 타계하면서부터였다. 육ㆍ해ㆍ공을 아우르던 ‘종합물류기업’ 한진이 대한항공ㆍ한진그룹, 한진중공업그룹, 한진해운, 메리츠금융 등 4개 그룹으로 쪼개졌다. 한진해운은 2003년 조중훈 회장의 3남 조수호 회장의 품에 안겼지만, 3년만인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사망하며 다시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잦은 ‘선장’ 교체 외에도 한진해운엔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며 해운업황이 급속히 얼어붙어 수천억원의 적자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자 대한항공에서 긴급 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경영난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4년 4월 한진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진해운 대표 이사로 직접 취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무보수 경영 등을 선언하며 그 해 24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도 36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그도 잠시였다. 침체된 업황에 부채규모는 6조에 육박하는 5조6000억원까지 늘었다.

2016년 4월 21일에는 최은영 전 회장일가가 한진해운 주식 96만7927주(0.39%)를 전량 매각했다. 그로부터 4일 뒤인 25일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최은영 회장은 ‘한진해운 부실 원인’으로 지목된 당사자가 자신의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미리 주식을 매각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채권단은 그해 5월 4일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협약 개시 결정을 내렸고, 한진해운은 그렇게 구조조정의 길을 걷게 되는 듯 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추가 자금 지원 요청에 채권단이 ‘지원 불가’ 결정을 내리며 불과 4개월만인 9월1일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을 하게 된다. 조양호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한진해운 임직원들에게 “한진해운 경영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채권단을 설득하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법원은 한진해운이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훨씬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진해운을 실사한 삼일회계법인이 존속가치 산정 없이 청산가치를 1조7900억원으로 추산해 법원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고, 법원은 결국 지난 2일 한진해운의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그리고 17일 마침내 파산 선고를 내렸다.

8년 전인 지난 2009년 12월 29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이래 한때 4만원을 웃돌던 한진해운 주식도 1000원을 넘지 못하는 ‘동전주’로 전락하다 완전히 폐지돼 버렸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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