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문단 내 성폭력, 그 이후
뉴스종합| 2017-02-20 11:36
2월 17일 오후 2시 서교동 창비까페 지하.

소극장 분위기의 공간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20대 혹은 30대 초반이 대부분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시선은 무대 한 가운데로 향해 있다. 무대 중앙에는 ‘그 사건’과 연결돼 있는 이들이 마이크를 돌리며 ‘그 날’ 이후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사건이란 바로 해시태그 ‘문단_내_성폭력’이다.

한 시인은 자신을 ‘생존자’라 표현했다. 시인은 등단 축하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축하의 말 대신 들려준 한 마디가 기억에 남았다. 그들은 문단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행태를 얘기한 뒤, 끝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

시인은 이후 풍문으로만 듣던 그런 술자리들을 만났다. 친구들의 당부대로 그는 몸을 사리며 성적 불쾌감이 생길 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그는 그게 “도망치는 방법”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이 이런 문단 내 성폭력을 키우는데 한 몫했다는데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한 출판편집자는 해시태그 운동의 발단이 된 베스트셀러 작가의 성추행과 관련, 고발자였던 편집자의 용기는 현실에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당시 고발자는 문제 소설의 편집자였는데 과연, 인기작가에게 감히 편집권을 들이댈 수 있는 편집자가 있을까냐는 얘기였다. 작가의 비위를 맞추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게 해선 안되는 문단과 출판계 위계문화는 불문율이다.

고양예고 강사 시인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졸업생 연대 ‘탈선’대표 오빛나리씨는 예고에서 문예창작 수업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 허상을 폭로했다. 마이크는 플로어로 이어지며 한층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한 여성이 자신을 “피해자, 생존자”라 소개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괴로운 건 경찰서, 의사, 상담사로부터 받는 한결같은 질문이었다. “그가 둔기를 휘두르며 협박했나요? 습작생과 시인 사이에 왜 위계가 성립돼나요?”. 사법시스템 안에서의 성폭력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가해자인 문인들이 명예훼손 등을 들어 피해자들을 몰아가고 있다며, 모여서 얘기하는 것 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한 트위터러는 상담오러 온 피해자가 문학은 자신에게 구원이었는데 이제지옥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피해자 역시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왜 저항을 안했나요?”

지난해 10월 트위터에 한 여성이 중진작가의 성추행을 고발하면서 터져나온 문단내성폭력 사태는 대중의 관심에서 좀 멀어졌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다. 피해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학교 등 현장에선 여전히 예술적 표현이란 모호한 말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5년만에 신작소설을 낸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이 ‘조리돌림’을 당한 건 예사롭지 않다. 소설 중 아기의 성을 표현한 대목이 도마에 오르면서, 작가의 과거작들이 모두 ‘털렸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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