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프리즘] 위험관리란…솥뚜껑 보고 우산뺏기?
뉴스종합| 2017-02-21 11:30
연초부터 주택금융시장이 아우성이다. 은행들이 집단대출에 깐깐지면서다. 집단대출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가 한꺼번에 받는 이주비ㆍ중도금ㆍ잔금대출을 말한다. 시장에서는 은행의 집단 대출 조이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더 악화할 거라고 하소연한다.

은행의 항변은 이렇다. 최근 주택 공급이 크게 늘었고, 시장은 하락세에 접어들어 예전처럼 집단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부실대출을 사전에 줄이는 것은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올해부터 시작된 잔금대출 규제 탓도 있다. 올해 1월1일 이후 분양공고가 된 신규아파트가 대상이지만, 이주비-중도금-잔금으로 이어지는 집단대출의 구조상 이주비부터 대출심사를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 은행의 생각이다. 심지어 최근 입주를 시작한 잔금 대출에 대해서도 심사기준을 조였다. 신규 아파트의 공기가 2~3년임을 고려하면, 3년 전 대출까지 소급적용하는 셈이다.

은행들이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부동산 거품이 다소 빠졌던 2013~2014년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하락 반전한 후 끝없이 떨어지자 담보 물건인 아파트의 가격을 산정할 때 한 달 뒤 가격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중도금 대출이 잔금대출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가 속출하기도 했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50%인데다 담보 물건 가치도 분양 당시보다 떨어진 탓이다. 추가 비용 없이는 아파트의 소유권 이전이 안되다 보니 일부 아파트단지는 집단적으로 입주 포기를 하며 은행의 애를 태웠다.

은행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보니 리스크관리를 하겠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사실 어렵다. 하지만 은행의 위험관리가 시장의 숨통을 조일 정도로 과도하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청약자격과 분양권 전매 제한을 강화한 11ㆍ3 대책 이후 실수요자 중심으로 개편됐다. 은행이 집단대출을 줄이면 실수요자들의 타격이 불보듯 뻔하다. 특히나 부동산 시장이 정점을 지난 상황에서 실수요마저 위축되면 시장이 빠르게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은행의 경영 활동이 부동산 시장 악화에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다.

재개발된 중소형 단지의 경우 원주민들이 은행 대출 길이 막히면서 집을 팔고 나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개발 이득도 못보고 30년 이상 살았던 동네에서 짐을 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지난 2014년 당시에도 대출을 못 받은 원주민들은 정착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웠다. 이에 원주민 100명 중 27~28명만 원래 동네에 정착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기업이나 가계 등 우리 경제의 주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중개하는 것은 은행의 주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직접 나서서 좌지우지하면 곤란하다. 은행들은 지난해 부동산 시장 덕분에 주택담보대출을 큰 폭으로 늘여 실적 잔치를 벌였다.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때처럼 ‘비 오는데 우산을 뺏는’ 은행의 주특기가 또 나왔다는 비난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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