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이형석의 영화X정치] ‘세 왕의 운명’, 대한민국 권력지도와 성(性)정치학
뉴스종합| 2017-02-25 08:04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다. 최대기업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구속됐다. 사정권력의 핵심에 있던 검찰 출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구속이 기각됐다. 각각 정치ㆍ경제ㆍ사법권력의 최정점에 있거나 있었던 인사들이다. 그들의 엇갈린 운명은 개혁과 반(反)개혁의 전선이 놓인 대한민국 권력지도의 윤곽을 드러낸다. 대통령은 바뀔 수 있고 기업은 흥망성쇠할 수 있으나, 사법권력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기득권의 최후 ‘보루’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말이다. 

영화 ‘더 킹’을 빌지 않더라도, 이들 혹은 이들의 자리는 줄곧 ‘제왕’의 수사를 빌어 표현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마저 현정부의 국정운영 실패 혹은 국정농단이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대기업의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창업주 이래로 줄곧 ‘왕 회장’이라 불렸다. 총수 혹은 총수 일가의 결정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황제경영’이라는 말도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인식돼 온지 오래다.

우병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황제소환’ ‘황제수사’ 등의 논란을 불렀다. 우 전 수석이 범죄 피의자임에도 ‘황제’처럼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수사에 임했다는 것이고, 검찰은 ‘한 식구’이자 최고 권력 실세였던 우 전 수석을 ‘황제’처럼 대우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구속 기각도 결국은 검찰권력의 기득권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적지 않은 국민들의 법감정이다. 

“검사, 판사, 변호사는 결코 법 앞에 평등한 ‘만인’이 되지 않는, 특별한 ‘소수’다”, “검찰은 결국 대한민국 최고의, 최후의 권력이지 않겠느냐”. 이러한 국민들의 비판적인 법감정은 한국영화 정서와 소재의 원천이 돼 왔다. 최근작으로는 ‘검사외전’ ‘내부자들’ ‘더 킹’이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는 정치와 경제, 사법권력의 ‘왕’들을 그린다. 그리고 ‘왕중의 왕’은 검사이며, 흔히 언론은 ‘킹메이커’가 된다. 폭력조직 혹은 범죄자는 왕의 ‘호위무사’로 역할한다. 


이들 영화에서 검사가 ‘권력 게임’의 주관자이자 플레이어가 되며, 여성은 이로부터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하나같이 남성들의 ‘복수극’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더 킹’에서 후반부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한강식(정우성 분)을 무너뜨리는 것도 처음에 그를 조사하던 여검사 안희연(김소진 분)이 아니라 복수에 나선 박태수(조인성 분)이다. 안 검사는 박태수의 복수에 활용되는 수단 중 하나이며, 철저히 ‘조연’에 머무른다.

이들 영화의 어디쯤에선가는, 전국 생중계됐던 지난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장면이 관객의 머릿속으로 호출된다. 영화 ‘더 킹’의 논평과 주석대로라면, 대한민국의 ‘킹’이 누구인가를 두고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이 다투던 상징적 장면이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다시, 대한민국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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