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광장-정용덕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 공직자의 소신행동을 가로막는 요인들
기사입력 2017-03-06 11:11 작게 크게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총탄에 대통령 영부인이 서거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본래 문세광은 대통령을 향해 돌진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하급 공무원의 발에 걸려 중심을 잃게 되면서 육영수 여사에게로 빗나간 것이다. 사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그 공무원을 불러 희망사항을 물었다. 사무관 한 번 해보는 게 평생소원이라는 그의 대답에, 청와대가 특진을 주선토록 총무처에 지시했다. 그러나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김중량 인사담당관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었다. 사무관이 되려면 승진시험 등의 규정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버텼다. 서슬 시퍼렇든 ‘유신정권’ 2년차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주 삼일절을 전후해 대통령 탄핵 관련 헌법재판이나 특검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관련 공직자들의 ‘책임 떠넘기기’ 행태가 일제히 보도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비서실장, 정무ㆍ민정ㆍ기획수석비서관, 행정관들이 어감의 차이는 있으나 이구동성으로, 자신은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집행했을 뿐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 등의 지시에 따라” 정책금융을 지원함으로써 조직과 국민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로 검찰에 출두한 전 산업은행회장 관련 기사도 있었다.

정책결정과 집행의 이원화 규범과 실제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이론적 근거와 사례들이 축적돼 있다. 탈(脫)정치화된 근대행정의 합리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이념형으로 체계화한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행정가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무능한 정치적 상관을 따돌리거나 혹은 부화뇌동하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반대로 정치권력의 ‘영혼 없는’ 도구로 전락할 이중적 특성도 예상하고 우려했다. 나치정권 말기 37세의 젊은 나이에 군수성 장관을 지낸 알베르트 슈페어라는 천재 행정가가 있었다. 그는 대체로 히틀러의 지시에 고민하면서 순응한 행정가였지만, 종전 후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가 고위직 나치 부역자 중에 유일하게 사형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과오를 참회하고 전범재판 과정에서 긴밀히 협조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론과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오늘날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대해서는 하급자가 그것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혹은 거부해야만 하도록 제도화가 돼있다. 이제 와서 윗사람이 시켰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집행했을 뿐이라고 발뺌하는 박근혜 행정부 관리자들의 변명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들이 이 정도의 기초 지식은 갖추고도 남았을 법률가나 학자 출신들인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적어도 세 차원의 권력 개념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부당함을 알면서도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상관의 지시에 순응하게 되는 일차원의 권력이다. 실제로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에 반하다가 목이 잘리거나 좌천된 유진룡 장관을 비롯한 문화부 관료들이 있었다.

둘째, 부당한 일을 지시한 윗사람과 마찬가지로 공익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지는 이차원적 권력이다. 더구나 입신양명에 몰두하는 인사라면, 지시에 따르는 수준을 넘어 상관을 부추기는 등 한 술 더 뜬 경우도 적지 않다. 고도로 집권화된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획일적 사고, 즉 ‘집단사고증후군’도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공익과 법에 따라 행동하면 장래가 불우해진다는 인식이 사회 통념으로 자리 잡는 삼차원의 권력이다. 공직자들의 소신행동을 가로막는, 가장 치유가 어려운 문화수준 권력이다. 아흔여덟 번째 삼일절을 기리면서 떠 오른 착잡한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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