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나는 너다
뉴스종합| 2017-03-13 11:31
495걸음이라고 얘기한 이도 있고, 300m라고 보도한 곳도 있다. 실제로 걸어보니, 500걸음이 채 안됐다. 시야만 보면 100m도 안되고, 100걸음도 못미쳐 닿을 듯한 느낌이다. ‘여기’와 ‘거기’는 생각보다 훨씬 가깝다.

마지막 주말 촛불집회가 열렸던 11일 서울 광화문.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았고, ‘탄핵축하 전’ 등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은 잔칫집 분위기 그대로였다. 한쪽에선 ‘재벌도 공범, 재벌총수를 구속하라’란 플랜카드 옆에서 ‘이석기를 석방하라’란 외침이 울렸다. 광화문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시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근조’ 리본을 단 참석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장례식같은 침울한 분위기속 대한문 앞 대형 화면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을 비롯 ‘법치주의 살해범’들의 얼굴이 올라가고 있다.

지난주까지 주말 서울 한복판을 점령했던 ‘촛불’과 ‘태극기’간의 거리는 500걸음이 채 안되지만 심리적 거리는 훨씬 멀다. 어쩌면 ‘아버지와 아들’, ‘인용과 기각’, ‘진보와 보수’ 일지 모를 두 진영간의 거리는 500걸음이 아니라 5만보, 300m가 아니라 300Km만큼이나 아득하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 두달 뒤 대선이다. 세상은 천하대란의 위기다. 극단은 위기를 먹고 자란다.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온 평균인들과 달리 문제는 늘 극단들이다. 재벌총수 구속이나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의 석방에 공감하는 촛불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당 의원까지 등장하는 ‘법치주의 살해범’리스트에 공감하는 보수 역시 다수는 아닐 것으로 확신한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탄핵 판결에서 보충의견을 밝히면서 인용한 성경의 한 구절이다. 탄핵심판은 보수 진보의 이념이 아니라 헌법질서 수호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진보 보수로 편을 가를 일은 아니다. 결국 대통령 탄핵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경제다. 탄핵여진에 휩쌓여 세월을 보낼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후 대선까지 2개월간 리더십이 공백이다. 대선정국, 검증되지 않은 포퓰리즘 공약속에 혼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사드보복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보호무역주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혼돈의 시기, 기업들에겐 악재가 중첩되고 있다. 국회 증인출석, 검찰수사, 특검 등으로 몇 달째 재계가 혼란에 빠져있다. 재계총수들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고,출국금지 등으로 밖에서 보는 시각도 예사롭지 않다.

검찰이 또다시 대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이미 수차례 압수수색 등으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고, 구속되기도 했다. 국가리더십과 경제의 이중위기에 빠진 국난의 시기에 기업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지 냉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과 서울시청의 거리는 5만 걸음이 아닌 500걸음이다. ‘여기’와 ‘거기’, ‘나’와 ‘너’의 거리도 그만큼 가깝다. 가르고 나눌 시기가 아니다. 힘을 모아도 부족할 때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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