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박근혜에 대한 신뢰가 종교가 아니려면
기사입력 2017-03-15 11:05 작게 크게

‘눈앞의 캄캄한 벽’.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선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으로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면서 ‘불쌍하다’며 눈물짓는 노모에게 막막한 ‘벽’을 느꼈다고 했다. 주말마다 벌어진 ‘태극기집회’에 모인 사람들, 탄핵 이후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 주변에서 밤을 새우며 무죄를 외치는 이들을 보면 벽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범죄 행위에 대한 증거와 증언들이 쏟아지는데도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아직도 ‘빨갱이’와 ‘종북세력’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대로 생각하면 태극기집회에 나선 분들도 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들 눈에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언론의 거짓 선전선동으로 무고한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종북 세력일 것이다. 북한 무서운 줄 모르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지 모르는 철없는 애들일 것이다. 말이 통할 리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확증편향성’이란 개념이 유용한 것 같다. 사람은 믿는 것만 보고 들으려 한다는 심리학 용어다.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 긍정적인 것만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어머님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영부인 역할을 야무지게 잘해냈고, 정치인이 된 이후 원칙과 소신을 지켜왔으며, 사적 이득을 챙기지 않았고, 국가와 결혼했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잔뜩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독재자의 딸’, ‘정수장학회나 육영재단 등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사이비 목사 최태민과 관계’ 등 부정적인 정보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행위를 머릿속에 구성하고 있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무수한 사실들이 쏟아질 때, 이들은 각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했을 것이다.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최순실과 고영태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이 당했다는 가정으로 모든 정보를 취사선택한 듯 보인다. 이런 가정과 어긋나는 사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신들이 믿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통시키기까지 한다. 반대로 박근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며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현대 철학은 ‘100% 진실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학조차도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 회의한다. 예컨대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지 않을 수도 있다. 100% 진실이 없다는 건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100% 확신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해결책은 이미 오래전에 제시됐다. 근대 철학의 선구자 데카르트는 진리에 도달하려면 ‘의심’이라는 방법을 쓰라고 했다. 이른바 ‘방법적 회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되묻는 것이 진실을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현대 사회에서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영역은 오직 종교뿐이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취사선택할 자유는 당신에게 있지만 당신이 믿는 게 종교가 아니라면 의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jump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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