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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광장-문창진 치의과학대학교 교수]노인정치와 노인공약
뉴스종합| 2017-03-23 11:02
일반적으로 정치인의 나이가 고령화되거나 노인세대들의 정치적 파워가 커지는 것을 노인정치라고 한다. 한국사회에서 노인정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원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매번 선거철만 되면 노인공약이 고개를 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2월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노인회 정기총회 행사에 국회의장을 비롯해 각 당 대표들이 모두 참석했다. 국경일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한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누가 보더라도 대한노인회는 단순한 노인단체가 아니라 막강한 정치세력임이 분명하다.

선진국에서도 노인세대의 입지는 강력하다. 스웨덴의 경우 복수장관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3명의 보건사회부 장관 중 1명이 노인정책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노인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커진 이유는 노인문제의 사회경제적 심각성 때문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노인들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유권자 중 노인인구의 비율은 2010년 15%이던 것이 2020년에는 25%, 2050년에는 무려 7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투표참여율도 어느 연령대보다 높다.

이제 노인유권자를 도외시할 경우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참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과거 노인폄하발언으로 타격을 입었던 정치인들이 여럿 있었다. 노인세대들은 자신들에게 잘 해주겠다는 후보에게 몰표를 몰아주어 승패를 가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인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기초연금 20만원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한다는 공약이 주효했다. 그러나 취임 후 그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공약실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재원문제였다. 아무리 멋진 공약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금년 조기대선국면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각 당에서 노인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을 소득 하위 80% 노인에게 월 30만원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있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월 20만원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소득 하위 5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차등 인상하겠다는 절충형 공약도 나왔고, 기본소득 100만원이라는 파격적 카드를 제시한 후보도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50%에 육박하고 노인자살률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노후소득보장제도가 성숙이 안 됐고 복지의 사각지대도 크다. 따라서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면 클수록 좋다. 또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 없으니 기초연금을 더 주겠다고 하면 당연히 환영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재원문제에 부닥쳐 공약실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경험들을 생각하면 이번 공약들이 얼마나 실천될지 모르겠다.

이번에 노인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은 공약실천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복지혜택을 늘리자는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공약실천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생각으로 공약을 앞세웠다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선거후 흐지부지된 공약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공약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집권 후 공약을 못 지키는 정권이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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