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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음악과 창극이 만났다?…주목받는 ‘흥보씨’
라이프| 2017-03-25 09:00
소리꾼 이자람ㆍ인디밴드 ‘실리카겔’ 김민수
국립극장 신작 창극 ‘흥보씨’ 음악감독에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저 말고 김민수 감독한테 사인 받아야지요. 저 같아도 그러겠어요”

인터뷰를 앞두고 소리꾼 이자람(38) 감독보다 인디밴드 ‘실리카겔’의 보컬ㆍ기타리스트인 김민수(25) 조감독의 사인을 받겠다고 농을 건넸다. 이자람 감독은 정색하며 맞장구를 쳤다. 쑥쓰러워 하는 김민수 감독의 수줍은 웃음 뒤로 이자람 감독의 눈엔 장난기가 슬쩍 비켜간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은 판소리 '흥보가'를 고쳐쓴 신작 창극 '흥보씨'를 4월 5일부터 16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작창, 작곡, 음악감독엔 소리꾼 이자람이, 음악 조감독엔 인디밴드 '실리카겔'의 김민수가 나선다. [사진=이상섭 기자/bobtong@heraldcorp.com]

소리꾼 이자람이 국립창극단과 첫 합을 맞춘다. 신작 창극인 ‘흥보씨’에서 이자람은 음악감독을 맡았다. 당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고선웅 연출이 이자람을 ‘찍었다’는 것 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자람 감독은 자신을 도와줄 지원자로 최근 인디밴드계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실리카겔의 김민수를 끌어왔다. 인디음악과 창극의 만남이다. 이 어울릴것 같지 않은 조합은 생각외로 ‘케미’가 좋다.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홍보가솔들’과 ‘쟁기질’ 음원도 호평일색이다. 뿐만이랴, 사전예매율도 60%를 가뿐히 넘었다.

창극에서 음악감독의 역할은 단순히 음악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고선웅 연출은 “창극은 ‘창으로 하는 극’이다”고 할 정도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장르다. 그러나 정작 이자람 감독은 “창극은 소리꾼 한 명의 역할을 여러 배우가 나눠 맡은 것이고, 근대에 극장이 생기면서 창극도 태어났다. 창극은 소리꾼을 배우로 쓰는 연극”이라며 “흥보씨는 대본이 워낙 특출나다. 나는 이야기에 음악을 입히는 역할”이라고 몸을 낮췄다.

‘흥보씨’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흥보가’의 이야기와 음악을 동시대에 맞춰 비틀고 변형시킨 작품이다. 전통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 예술로서의 창극’을 표방하는 국립창극단의 그간 도전과 맥을 같이한다. 흥보와 놀보 형제의 탄생 비화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다른 별에서 온 스님’ ‘말하는 호랑이’ 등의 캐릭터도 등장하며 ‘아스트랄’한 세계로 넘어간다. 드라마의 전개와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게 이들 음악감독의 몫이다. 

[사진=이상섭 기자/bobtong@heraldcorp.com]

사실 두 사람 모두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다. 이자람 감독이 흥보씨 대본에 어울리는 편곡자를 찾는다고 하니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곰사장)가 추천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창극과 인디음악이 만난 셈이다. ‘흥보씨’이기에 가능한 조합인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을 하던 사람이라 창극은 처음 접하지만, 대본을 보면서 내 스타일 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업 과정에서 음악적 관점이 다른 부분을 만나게 되는 데 무척이나 흥미롭다” 실리카겔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자람 감독 표현에 따르면 ‘괴물같은 잠재력을 지닌’) 김민수 조감독은 이번 작업이 무척이나 즐겁다.

작업방식은 ‘핑퐁’이다. 음악회의에선 대본을 놓고 극과 어울릴만한 음악 컨셉을 잡는다. 컨셉이 확정되면 김민수 조감독이 데모버전을 만든다. 그 위에 이자람 감독이 노래를 얹고, 수정을 거듭하며 음악이 완성된다. 이국적 느낌을 주는 ‘쟁기질’도 이같은 과정으로 완성됐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자이토치’에서 목수들이 일하는 장면이 힌트가 됐다. “김 감독이랑 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언어가 통하는 사람이다. ‘쟁기질’은 순식간에 완성됐다. 경험이 쌓이면 장영규 감독의 뒤를 이을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감독이 되지 않을까 싶다”(이자람)

당대 소리꾼 이자람과 인디밴드 김민수의 만남은 흥보가 원형을 토대로 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변주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음악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를 키운다.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첫 무대는 오는 4월 5일 저녁 8시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이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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