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데스크칼럼-김필수] 두 개의 야성적 충동
뉴스종합| 2017-03-27 11:03
#1. “차라리 법으로 규제해 주세요. 재벌 오너는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그냥 대주주로서 배당 받고, 보유 주식만큼 의결권만 행사하겠습니다. 재벌 오너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재벌 오너가 돈과 권한(경영) 중 하나만 갖게 하면 되잖아요”

#2. “재벌 지배구조 문제는 계속 겉돌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한시적으로 지배구조 문제를 좀더 쉽게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게 가능할까요. 한쪽에서는 재벌에 특혜를 준다 할 테고, 재벌은 내 재산 내가 알아서 정리하면 되지 왜 사회적 합의를 통해야 하느냐고 반대할 수도 있을 텐데요”

#1은 모(某) 재벌 총수의 말이다. 파격적이다. 서너 차례 확인해도 진심이란다. 실현 불가능한 일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반복해 강조했다. 대내외적으로 점점 척박해지는 기업환경, 옥죄여오는 정치권의 규제 공세, 그리고 고조되는 반(反)기업정서에 지친 재벌의 모습이 역력하다.

#2는 모(某) 경영학자가 제시한 재벌 지배구조 해결 대안이다. 이렇게라도 털고 가야 해묵은 과제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관계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재벌 쪽에서도 수용하지 않을, 탁상공론일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이다.

#1에서의 재벌은 유약하다. 의욕도 한풀 꺾인 듯 하다. 반어적 표현이었겠지만, 그 정도로 코너에 몰려 있다는 반증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늘 기업인에게 주문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있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 공격적인 기업가정신). 지금 상황에서 이를 요구할 수 있을까.

#2에서의 재벌은 강한 모습이다. 정면돌파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앞날이 녹록치 않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지배구조 문제 등에 소요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매몰된다면 여기서도 ‘야성적 충동’을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미국에는 야성적 충동이 충만한 기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미국 기업들은 신이 났다. 법인세제를 개편하면서 국경조정세(수입세 20%, 수출보조금 20%)라는 희안한 개념을 만들어 전방위 지원을 해주니 말이다. “시장에서 ‘야성적 충동’을 되살리는 여러 요소가 처음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보도(FT)까지 나온다.

아베 신조가 이끄는 주식회사 일본은 수년째 정부가 돈 풀기(아베노믹스)를 지속중이다. 국가가 재정부담을 안고 기업을 독려하고 있다. 순풍을 탔다.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렀다. 일자리가 넘쳐난다.

한국 대선주자들은 반대 방향으로 ‘야성적 충동’을 분출중이다. 보수주자마저도 ‘기업 옥죄기’가 한창이다. S기업이 본사를 해외로 옮긴다는 얘기가 떠돈다. 차기정부에서 한미FTA 재협상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Bye Korea!’ 채비를 마친 외국기업들 얘기도 들린다. 한계기업들의 마지노선은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순으로 도래하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 정치에 매몰된 대선주자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복안과 비전은 있나. 정치가 주도할 2017년은 한국경제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pil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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