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뿌연데 정상?”…선진국 못 따라잡는 국내 미세먼지 기준
뉴스종합| 2017-03-30 09:01
-느슨한 환경기준…美ㆍ日의 2배
-국민 불신 “WHO 수준 강화해야”
-전문가 “정부 해결 의지가 문제”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직장인 김종진(45) 씨는 지난 29일 출근길에도 미세먼지를 막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평소 기관지염이 있는 김 씨에게 요즘 같은 미세먼지는 위험한 수준이지만, 이날도 거리 전광판에 나온 미세먼지 측정치는 정상을 가리켰다. 김 씨는 “당장 눈앞이 뿌옇게 보이는데도 측정치는 항상 정상을 가리킨다”며 “미국보다도 기준치가 느슨하다고 하던데, 이러면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에 따르면 지난 29일 서울 시내 초미세먼지 일평균 농도는 39㎍/㎥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기준에 따르면 50㎍/㎥ 이내기 때문에 정상 수치에 해당한다. 그러나 WHO 기준을 대입해보면 사정은 다르다. WHO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권고기준은 ‘일 평균 25㎍/㎥ 이하’로 이날 서울 시내 25개 구 측정소 중 WHO 권고안을 통과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사진=헤럴드경제DB]

WHO의 초미세먼지 권고기준과 국내 기준의 차이가 계속되자 시민들도 국내 초미세먼지 기준을 대부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강화된 외국 기준을 사용하는 국외 예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서민경(38ㆍ여) 씨는 “외국에서 제공하는 화면에는 서울 시내가 모두 노랗거나 빨갛게 나오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이트를 보면 ‘보통’ 수준이라고 나온다”며 “이렇다 보니 국내 측정치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연평균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환경기준은 WHO(10㎍/㎥ 이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느슨한 편이다. 미국은 초미세먼지 기준을 15㎍/㎥ 이하에서 지난 2012년 12㎍/㎥ 이하로 강화했다. 일본도 15㎍/㎥ 이하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25㎍/㎥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국 중 한국보다 기준이 느슨한 국가는 중국(35㎍/㎥ 이하) 정도밖에 없다.

정부는 초미세먼지 기준이 느슨하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환경 기준은 WHO의 4단계 기준(권고ㆍ잠정목표 1,2,3단계) 중 중간 단계인 ‘잠정목표 2’에 해당한다”며 “공청회와 국내 초미세먼지 현황 등을 고려해 기준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무작정 WHO 기준으로 상향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며 “기준이 올라가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일 ‘나쁨’ 수준으로 기록돼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했다. 애초 정부는 지난 2013년에 “향후 초미세먼지 상황에 따라 환경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기준은 5년째 제자리 상태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느슨한 환경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양현 고려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초미세먼지 원인 자체데 대한 규제도 필요하지만, 미세먼지 경고 시스템의 강화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활동가 역시 “정부의 대기환경기준은 정책 방향과 해결의지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라며 “정부가 핑계를 대며 대기환경 기준을 강화하지 않는 상황은 해결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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