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자율적 채무조정의 모범사례 돼야 할 대우조선
뉴스종합| 2017-04-17 11:10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이 마리톤협상 18일만에 대우조선 채무조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제 대우조선의 운명은 17∼18일 이틀간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결정되지만 가결 가능성은 높다.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큰 손 사채권자들은 국민연금과 같은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파국 일보직전까지 가는 숱한 고비 끝에 대우조선은 구조조정 출발까지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국민연금은 협상 과정에서 절묘한 해법으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으며 연기금 사채권자의 맏형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모든 이해당사자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투자자의 신뢰를 얻은 최선의 협상타결 내용”이라고 자평할 정도다.

국민연금은 “불확실한 50%(만기 연장 회사채)보다는 확실한 청산가치라도 건지는 게 낫다”는 배수진 전략으로 산은으로부터 청산시 사채권자가 확보할 금액(1000억 원)을 담보로 받아냈다. 실질적으로 상환을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진 조치다. 또 내년부터 매년 실사를 통해 대우조선의 상환 능력이 확인되면 회사채 조기 상환을 추진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기존의 ‘우선상환권’ 제안보다 더욱 전향적인 내용이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의 재무적 상태와 경영정상화 가능성, 재무적 투자자로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실익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채무조정 수용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보다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뿐 아니라 대우조선에 투자한 모든 사채권자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따진 뒤 결정했다”는 주장까지 공감을 얻게 됐다.

협상상대방인 산업은행의 양보와 수용이 전제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결국 실리를 얻어내고 채무조정에 찬성함으로써 국민연금은 그동안의 ‘명분쌓기용 시간끌기’라든지 ‘책임회피용 어깃장’이라는 곱지않은 시각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대우조선을 법정관리로 떠 민 당사자가 될 뻔 했지만 오히려 대우조선과 수많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감안한 결정이란 명분까지 얻었다. 국민연금 자신을 위해 결정한 내용이 곧 국가경제를 위한 결단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지시보다 한층 어려운 자율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한 거버넌스(의사결정 구조)를 정립해야 함은 물론이다. 서별관회의가 부활한다해도 흔들려서는 안되는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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