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쉼표] 탕진잼
뉴스종합| 2017-04-24 11:20
스쳐 지나가듯 체류 시간이 짧은 건 무슨 속셈일까. 한참을 넋놓고 바라볼 짬을 언젠간 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다. 목련도, 벚꽃도 땅에 떨어지고 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느낌은 내 속이 너저분한 탓이지 꽃의 잘못은 아니다. 이별을 재촉하는 바람을 훼방꾼으로 몰고 가는 건 더 속좁은 일이다.

아직 상처 하나 없는 꽃잎의 자유낙하. 그들을 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 번도 소유한 적 없는데도 찾아오는 뭔가 허(虛)한 상실감은 넉넉하게 내리는 꽃비가 채워준다. ‘오늘만 살겠다’ 싶은 방탕과 일탈의 욕구도 딱 그 지점에서 멈춘다. 위로받아서다.



과장을 좀 보태 두 집 건너 하나 꼴로 요즘 퍼져나가는 가게가 있다. 인형뽑기방이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60배 이상 늘었다. 1만원을 넣고 십 여 차례 인형을 뽑을 기회를 얻는데, 여기에 재미붙인 젊은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가진 돈을 펑펑쓰는 재미라는 뜻의 ‘탕진(蕩盡)잼’이란 신조어가 나왔다. 인형을 집어올릴 집게를 요리조리 조종하는 맛, 원하는 인형이 떡하니 걸렸을 때의 희열…. 모두 찰나의 웃음일 뿐인데, 여기에 매달리는 상처받은 마음들이 숱하게 늘고 있다.

이런 헛헛함을 일소할 사람이 있다면 온 마음을 탕진해서라도 기꺼이 뽑겠지만, 모두 자격미달이다. 미래를 얘기해야 할 시간에 과거로 물고 뜯는다. 굳이 내 발로 찾아가 공들여 뽑을 만큼 매력발산하는 상품이 없다. 그저 그런 인형을 뽑는 ‘손 맛’에 그칠 수준이다. 선택 자체가 고역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찢겨진 민주주의가 애처롭다.

후보들만 비난할 순 없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해서다. ‘5ㆍ9 대선’. 목련과 벚꽃이 산화(散花)한 자리를 차지한 장미꽃길을 걸으며 우린 또 어떤 상념에 젖을 것인가.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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