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알렉시예비치 “소련 ‘붉은 유토피아’ 민낯 말하고 싶었다”
라이프| 2017-05-23 11:31
-‘허삼관매혈기’ 작가 위화
중국은 언론·출판 검열 심각
내작품 제대로 나올지 걱정
中 50대작가들 文革 상흔 여전
90년대생들은 아이돌 대접…

세계적인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이 23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과 세미나룸에서 열린다.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주제로 열리는 올해 포럼에는 노벨상수상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프랑스)를 비롯, 롤랑 바르트의 후계자 앙투안 콩파뇽(프랑스), 탈식민주의 문학의 거장 누루딘 파라(소말리아)와 아미타브 고시(인도), 두 차례 계관시인으로 추대된 로버트 하스(미국) 등이 참석한다.

또한 ‘허삼관 매혈기’로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余華), 일본 현대문학을 이끄는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소설 ‘종군위안부’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 여성작가 노라 옥자 켈러,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추리소설 작가 코스틴 바그너, 번역가·음악가·승려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스도 초청됐다.

국내에서는 고은, 황석영, 도종환, 김애란, 장강명, 정유정 등 50여 명이 발제와 토론에 참여한다.


포럼 기간 오전에는 ‘우리와 타자’(23일), ‘세계화와 다매체 시대의 문학’(24일), ‘작가와 시장’(25일) 등 소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23∼24일에는 각각 오후 7시30분 KT스퀘어 드림홀에서 ‘동아시아문학과 세계문학 교류의 밤’ 행사가 열린다.

이번 포럼에 참가한 벨라루스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8)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58)는 사회주의체제를 겪은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두 사람의 글쓰기 방식과 문학의 역할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알렉시예비치 “내 소설의 주인공은 작은 사람들”=’증언문학’을 고수해오고 있는 알렉시예비치는 19일 광화문 교보문고빌딩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목소리 소설’을 쓰는 이유로 40여년 소련시절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소박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산주의의 민낯이 어떤지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련의 지난 공산주의 40여년은 ‘붉은 유토피아’라고 부르고 싶은 시대라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시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일상에서 만나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이들을 ‘작은 사람들’이라 불렀다. 영웅이나 유명인 대신 이들을 택한 건, 이들이 주로 국가의 이용대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들의 역사는 간과되기 쉽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그는 “작지만 큰 고난을 겪어낸 큰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가 하나의 작품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는 사람은 200~500명 정도, 이들을 인터뷰하고 가닥을 잡고 작품을 완성하기 까지 5년에서 10년이란 기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증언문학은 피해자들로부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얘기를 듣고 기록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간단치 않다. 그는 이 과정을 인터뷰라기 보다 그들의 인생, 일상 등 삶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대의 일원으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증인”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 그가 이런 긴 과정을 통해 알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진실’이다.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알리는게” 책을 쓴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따라서 현장은 그의 글쓰기의 원천이다.

그는 “ ‘아연 소년들’을 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가려고 하자 주위에서 말렸다”며, “러시아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갈 수 있다면 당연히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알렉시예비치는 “공산주의에 대해 이젠 쓸 만큼 충분히 썼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사랑을 주제로 쓰려 한다는 말도 했다.

“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인간의 끔찍한 삶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좀 더 강건하게 해주기 위해 쓰는 것이다.”

▶위화 “사드, 한중관계 언제든 양국관계 도화선 될 수 있어”=“최근에 언론통제, 출판 검열이 강화되면서 내가 쓰는 작품들이 정상적으로 출판될 지 자신하기 어려워졌다.”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로 잘 알려진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는 최근 중국내 검열이 어떤 이유나 배경도 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예전만 못해졌다는 얘기다.

소설 ‘허삼관매혈기’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는 ‘형제’‘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등의 작품을 통해 중국의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드러내왔다. 중국사회의 도덕성 상실, 가치관 붕괴 등을 날카롭게 지적한 산문 ‘사람의 목소리는 ~’은 중국내 출간되지 못했다.

과거에는 픽션이라는 특징에 기대 ‘5월35일식의 글쓰기’가 가능했지만 이젠 그런 것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게 그의 고백이다. 5월35일식의 글쓰기란 금기어인 문화혁명이 일어난 날짜를 가상으로 설정,피해가며 표현하는 글쓰기다.

그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우리와 타자, 너와 나의 구분짓기와 관련, 상황은 다르지만 세계가 모두 직면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문학은 어떤 사건에 대해 “거리감을 두고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발효과정을 거쳐 표현된다는 점에서 신문보도와 다르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와 중국의 반응과 관련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으로 한중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든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전적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완전 해결된 건 아니기 때문에 양국관계 도화선이 될 수 있는 문제는 남아있다”며, 그렇긴 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양국관계는 안정적, 발전적으로 나아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사드배치 관련, 긴장이 가장 고조됐던 때는 지난 4월. 한반도 전쟁관련 보도가 계속되는 와중에, 세계문학포럼 참석차 서울에 간다고 하자 친구가 만류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의 지식인들을 만난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핵위기는 한국사람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친구에게 “내가 가는 서울이 네가 있는 북경보다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는 것.

그는 현재 중국 문단 분위기와 관련, 50대인 자신을 포함한 중국의 작가들은 ‘문화혁명’ 시대 배경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문혁에서 받은 정치적, 사회적 요소가 작품에 많이 부각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반면 요즘 30대 작가들은 부모 세대의 당시 얘기를 소재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90년대생 작가의 경우 팬 클럽을 거느린 아이돌 작가도 있다고 말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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