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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정조의 질문 ‘국정안정 어떻게…’
라이프| 2017-05-26 11:25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책문’
통치철학·정책방향 고스란히
문예진흥·역사기술 등 78개 질문
오늘의 국정에 던진 역사적 교훈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인재의 등용문으로 세 번에 걸쳐 치렀다. 이 중 마지막에 치러지는 시험과목이 책문(策問)이다. 왕이 출제하는 이 시험문제는 국왕의 평소 통치철학과 정책에 대한 고민이 담기게 마련이다. 왕은 책문을 통해 예비 관리와 신하들을 대상으로 국가의 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책을 요청했다. 일종의 공론의 장인 셈이다.

능력위주의 인재 등용으로 탕평책을 실시해 역사적 평가를 얻고 있는 개혁군주 정조의 책문은 혼란기 통치자로서의 고심과 정책의 중심과 방향을 어디에 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776년 왕위에 오른 정조가 낸 첫 시험문제는 정치의 안정과 혼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란 질문이었다.

유교에서 정치의 안정과 혼란은 우주의 순환하는 기운인 기수(氣數), 혹은 인간의 이해득실에 의해 좌우되는 인사(人事)에 달렸다고 봤다. 정조는 자신의 견해를 첨부하면서,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진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에게가장 중요한 현안은 ‘소통’이라고 밝힌다. “우주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로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않느냐”란 문제라며, 잘못된 인사문제를 바로 잡고 쇠퇴해가는 기운을 어떻게 해야 만회할 수 있는지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책문에는 이미 대안과 대책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책문 자체가 경서와 사서 등 정치지침서에 담보돼 있는 정치의 상식을 재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1778년 봄, 문신들을 대상으로 한 정조의 책문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계절적 특성처럼 백성의 삶을 생기발랄하고 활기차게 만들 수는 없는지 고심하는 제왕의 철학적 단면을 보여준다.

정조는 천지인 삼원의 특성을 바탕으로 만물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자신의 정치는 우주자연의 이치를 본받기에는 부족해 보리 고개라 불리는 춘궁기를 넘기기 어려운 가난한 집이 많다고 자책한다. “음지의 골짜기에 햇살이 들기에는 아직도 더디고 봄과 같은 시절을 백성들에게 베풀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삼황시대와 같은 봄기운을 누리게 하려면 어디에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대책을 저술해 보라고 주문한다.

정조는 먹고 사는 일 뿐 아니라 문화국가를 꿈꿨다. 1777년 치른 증광전시에 낸 책문은 규장각을 만들어 국가적 문예부흥을 꾀하려는 정조의 꿈이 담겨 있다.

정조는 이 책문에서 규장각 설치의 취지를 “나라의 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이 최고지도자의 맨 먼저 해야 할 책무”이며, “단지 보여주기 위해 행사를 하는 일시적이고 가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왕가의 규범과 공적을 세상에 드날리고 문화를 통해 정치와 교화를 진흥하는 일을 우선적인 책무로 삼겠다”는 것.

이를 통해 위로는 지도급 인사들이 몸소 예악을 실천하고, 아래에선 백성들이 이를 본받아 사회분위기를 크게 변혁해야 하지만 인재를 찾는 일은 어렵고 꽉 막힌 서생들은 바뀌지 않아 한탄스럽다며, 규장각이 의도하는 바를 본받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은지 대책을 제시하라는 과제를 던졌다.

역사를 어떻게 기술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책문도 있다. 역사를 다루던 실록낭청 및 산판과 삼조 당하관의 시험에 낸 문제로 역사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려는 의도가 비친다.

정조는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인간사회의 규범이 되기 때문으로 봤다. 위로는 최고지도자의 말과 행동, 정치적인 법령을 기록하고 아래로는 당시 사람들의 훌륭한 일과 간사한 일, 옳은 일과 그른 일 등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것. 한번 기록하면 함부로 고치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작업이 엄중하다는 걸 보여준다.

정조는 그런 중한 역사 기록이 후대로 내려올 수록 어긋난 것이 많다며, 곧은 역사가, 훌륭한 역사가가 드물다고 개탄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변론을 하며 시비를 가릴 때는 간혹 자신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에 따르고 중요 사안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견문에 의지”해 시대를 추동하는 지침이나 기준으로 삼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밀하고 꼼꼼한 역사저술을 담당할 사학 발전과 사재 배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조는 관료들에게 물었다.

정조 책문에는 이밖에 정치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한 학문이나 민생을 위한 정책, 인재양성과 선발에 관한 시대적 요구들도 들어있다. 다른 책문에선 잘 보이지 않는 지도자의 성찰과 애민 정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78가지 책문을 담은 ‘정조 책문, 새로운 국가를 묻다’는 고전의 대중번역에 힘쓰고 있는 신창호 고려대 교수가 현대어로 풀어 써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정조 책문’은 격동의 시대,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그 근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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