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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인사청문회서 드러난 大韓民國 민낯…‘위법의 관행화’
뉴스종합| 2017-05-28 08:38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오늘 이 자리에서 선거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낙연<사진>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위장전입 논란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위법ㆍ편법이 관행화된 한국사회의 슬픈 현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 병역 면탈 ▲ 부동산 투기 ▲ 세금 탈루 ▲ 위장전입 ▲ 논문표절을 5대 비리로 규정하고 이에 연루된 인사는 고위공직에서 원천배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임 실장의 발표로 청와대는 이 공약이 깨졌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5대 인사원칙’에 부합하는 흠결없는 인재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장전입은 우리사회의 관행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일반 국민들 중에도 여건이 되면 부동산 투기를 위해, 자녀교육을 위해, 세금을 줄이기 위해 위장전입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산장려금이나 복지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병역기피와 부동산 투기도 마찬가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비판하지만, 기회가 되면 위법을 관행처럼 저지르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위장전입 의혹이 있던 고위공직 후보자는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포함, 최소 16명에 이른다.

▶‘내로남불’의 소모적 논쟁…대응보단 잘잘못 따지기 바쁜 정치권= 문 대통령이 비난받는 이유는 스스로 세운 5대 인사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서서 사과했지만, 야권은 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까지만해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위장전입이 분명한 위법이긴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은 공직자에게는 좀 더 엄격한 도덕기준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제1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위장전입 정권을 만들 작정인가”고 비판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 모두 상대방을 향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내로남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여권은 소모적 정치논쟁을 벌이는 야권을, 야권은 위법에 양해를 구한다는 야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과거 정반대 입장이었던 자신에 대해 함구했다. 그 사이 새 정부의 인사ㆍ조직개편과 국정운영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에게 돌아가게 됐다.

▶변화의지는 개혁의 첫걸음= 도덕주의를 강조한 ‘깨알검증’으로 인재를 놓치는 것은 우리나라에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위법을 눈감고 넘겨버리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 사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쳐나가는 것이다. 전 정부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비난을 받은 이유는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여권도 ‘잘못을 직시하고 고쳐나가겠다’가 아니라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면 뽑을 인재가 없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에 비난받았다.

위법의 관행화를 근절하는 첫걸음은 잘못에 대한 반성과 고찰, 그리고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청와대의 사과와 변화의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임 실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심각성과 의도성, 반복성과 (위반)시점이라는 나름의 인사검증 기준을 적용해 5대 인사원칙의 취지를 살리겠다고 밝혔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도 인사기준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은 “내 속의 ‘위선’과 ‘언행불일치’를 직시하고 이를 고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스스로의 내로남불을 인정하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모순에 대해 사과하고, 국민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한 뒤 변화를 위해 힘쓰면 위법의 관행화를 근절할 수 있다.

사회를 변하게 하는 것은 소수의 빼어난 업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변화의지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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