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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이 책!] 모든 乙들의 짧고도 강렬한 유쾌한 복수극
라이프| 2017-06-23 11:42
지난주 연세대에서 텀블러 사제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범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모두 교수에게 원한을 품은 학생의 소행이 분명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진 피의자는 역시나 공대 교수 소속 학과의 대학원생이었다. 폭탄은 나사와 못이 들어가 폭발과 함께 튕겨 나가는 구조로 자칫 피해자에게 큰 부상을 입힐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범인이 사람들의 추측대로 피해자 교수의 지도를 받는 대학원생인 것으로 밝혀지자, 사건에 대한 관심은 묘하게도 범인에 대한 비난보다 교수들의 도를 넘은 갑질에 대한 성토로 바뀌었다. 각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에는 범인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고, 학생들의 인건비를 갈취하거나 부당한 업무 지시 등 압도적 지위를 이용해 대학원생들의 인권을 침해해 온 교수들의 행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주요 대학들은 연세대 사건을 계기로 대학원생들의 권리 장전이나 인권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교와 교수들에게만 개선을 맡겨두기엔 그 자정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폭발 사건과 이어지는 폭로들을 지켜 보며, 소설 쓰는 현직 과학자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에 실린 단편 ‘흡혈귀의 여러 측면’이 먼저 떠올랐다.

소설의 주인공은 학생들의 인건비를 갈취하고, 연구 명목으로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실험용으로 쓰겠다고 구매한 귀금속을 금은방에 팔아 넘겨 현금을 챙기는 질 나쁜 공대 교수 송진혁이다. 그런 그가 더 큰 노다지를 발견했으니 적외선을 혈액에 쪼이는 연구를 하겠다며 보건복지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받아 비싼 피를 사들여 실제 실험은 하지 않고 혈액을 외국 기업에 되파는 짓을 시작한 것.

그러던 어느 주말, 학생들에게는 연구비를 제대로 쓴 것처럼 처리하게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잡무를 시켜 놓고, 자신은 백화점에 가서 연구비로 애인의 속옷을 사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긴다. 그런데 갑자기 혈액에 관한 조사를 하겠다며 유네스코 조사관이 연구실로 들이닥쳤다는 연락을 받는다. 조사가 나왔다는 말에 송진혁 교수는 부리나케 학교로 돌아오는데, 과연 학생들의 등골을 빼먹던 송진혁 교수는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까?

현직 과학자로 기업에서 일하면서도 왕성한 필력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에는 ‘흡혈귀의 여러 측면’ 외에도 세상 모든 을들의 유쾌한 복수가 가득하다. 그 주인공은 대기업으로부터 갑질을 당해 인생을 망치는 연구원일 때도 있고, 인간들로부터 폐기 처분을 기다리는 미래 사회의 로봇일 때도 있고, 홀로 지능을 키운 인공지능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은 한결 같이 따스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데, 자신의 약점을 잡고 이용하려는 인간을 거꾸로 이용하며 인공지능이 묻는 질문은 무엇보다 큰 울림을 남긴다.

“더 사람 같다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까?”

아작 출판사 마케터 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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