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라이프칼럼-강태훈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대입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뉴스종합| 2017-06-27 11:25
어떤 분야의 정책들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포지티브(positive)와 네거티브(negative)로 나누는 것이다. 전자는 할 수 있는 것들을 규정하고 나머지는 금지하지만, 후자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규정하고 나머지를 허용한다.

비슷하게 대학입시 정책이나 전형방법들도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대입전형 방법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시도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과 차별화된 입시 정책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어서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래에선 대입과 관련해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따져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사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세 가지 정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수능에서 과도한 암기를 요구하거나 교묘하게 실수를 유발하는 문항을 출제 하는 것은 사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학생들이 학습을 하면서 상위 수준의 개념과 그 적용 방법을 익혀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보다 ‘EBS 교재 통째로 외우기’, ‘수많은 종류의 문제집 풀기’ 그리고 ‘시험 볼 때 실수하지 않기 연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는 점이다.

둘째, 수능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수능 절대평가 하에서 등급을 4~5개보다 많이 구분하는 것은 사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등급 수가 너무 많아지면 각 등급에 따라서 알아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명확한 차이를 두기 어렵고 이는 절대평가의 기본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만약 변별력 확보를 위해 많은 등급이 필요하다면 하나의 시험 결과를 잘게 나누려 하지 말고, 미국의 SAT1ㆍ2, AP처럼 난이도 수준과 문항 유형이 다른 검사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수학을 예로 들자면, 각 지원 학과의 특성에 따라서 어떤 학생은 기초공통 수학 시험만 보고 또 어떤 학생은 미적분 시험까지 추가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셋째, 다양한 고등학교에서 각각 산출된 내신 성적을 그대로 동일 척도 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사실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하려면 전국 고등학교의 교육 수준이 모두 같거나 모든 학교에서 전국 공통의 성취기준에 의해 내신이 산출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둘 중 어느 것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내신을 입시 전형요소로 다룰 때 일정 수식에 의한 정량화보다는 입학사정관이 읽고 해석하는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수많은 요소를 감안해 개별 입시생의 고교 생활 동안의 학업 성취도를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학년도 입시에서 전체 모집인원 중 약 40%를 선발해 가장 비중이 큰 학생부교과전형의 경우 여러 고교에서 산출된 입시생들의 내신 등급을 그대로 상호 비교할 수 있다고 보고 정량적 정보로 환산해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일들이라 믿고(혹은 믿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계속 하고 산다면 우리는 보통 그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