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위기의 인사동]중국산 기념품ㆍ화장품 매장 등 점령…‘전통’이 밀려났다
뉴스종합| 2017-07-22 09:58
-박리다매형 중국산 가게 점령한 ‘인사동’
-임대료 매년 15% 상승 전통상품은 줄폐업
-비권장업소 규제한다지만 강제성 떨어져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한국 전통문화 1번지’ 인사동에서 ‘전통’이 쫓겨나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전통이 사라진 거리에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화장품 가게가 자리를 잡았다.

2002년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된 ‘인사동 문화지구’는 종로구 인사ㆍ낙원ㆍ관훈동 일대 17만5743㎡ 규모의 전통문화 특화지역이다. 주말 하루 관광객 수가 많게는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 국적 불명의 수입품을 판매하는 옷, 신발 가게와 프랜차이즈 커피숍, 화장품 가게 등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상점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전통문화거리’란 말은 무색해 진지 오래다. 

1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외국인 관광객이 가방을 고르고 있다.

실제로 인사동길 초입에서부터 전통과 동떨어진 가방 가게가 값싼 가방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예쁜가방 만 원’이라는 현란한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인사동길 곳곳에는 중국산 공예품을 떨이로 파는 가게에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종로 2가 방향으로는 형형색색의 화장품 가게들이 관광객을 현혹했다.

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하루하루 퇴색해가는 인사동 전통에 정모(47ㆍ여) 씨는 “이대로면 인사동 전통 자체가 없어지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 씨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자주 가던 전통찻집이 비누 가게로 바뀌었다”며 “3평 남짓한 소규모 매장이지만 임대료가 껑충 뛰다보니 폐업할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동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있는 상인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1979년부터 도예공방을 운영했다는 이모(81ㆍ여) 씨는 “옛날에는 필방, 화랑, 골동품점 같은 전통 물건들이 거리를 메웠는데 지금은 중국 제품이 판을 치면서 도떼기시장 같이 변했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동 거리를 오랜 시간 지켜온 ‘터줏대감’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줄 폐업하고,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박리다매형 중국산 옷가게나 기념품점 등만 살아남아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 씨는 “하루 매출이 적을 때는 10만 원도 안 되는데, 임대료는 계속 오르니 감당이 안된다”며 “바로 옆집은 임대료가 400만원에서 450만원으로 올라 결국 폐업했다”고 말했다.

인사동에서 25년째 필방을 운영하는 김모(61) 씨도 “임대료가 매년 10%~15%씩 오르니 원래 있던 사람들은 못 버텨서 나가고, 가방, 옷 가게가 인사동의 주 품목이 돼버렸다”며 “전통을 간직했던 과거의 인사동과 분위기가 달라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와도 볼거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 포털 ‘부동산114’에 따르면, 인사동 중심 도로변의 약 10평(33㎡) 점포 한 달 임대료는 700만∼800만원에 이른다.

임대료가 상승하니, 자구책으로 ‘돈 벌이가 되는’ 한류 스타 사진집, 양말, 부채, 열쇠고리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었다. 가게 내부에는 전통 탈, 한지, 붓 등을 진열하고 가게 외부에서는 한류 스타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을 팔아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2002년 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골동품점, 표구점, 화랑, 필방 및 지업사, 민속공예품점 등을 5대 권장업종으로 지정해 상권을 보호하고 있다.

비권장업소로 지정된 화장품 매장, 이동통신사대리점, 게임제공업, 관광숙박업 등은 인사동 중심 거리에 진입하는 것이 제한돼 있지만 아직까지 종로구청이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없어 강제성이 떨어진다.

인사동 지역 전체로 따지면 2011년 권장 업종 503곳, 비권장 업소 1273곳에서 2015년 권장업 442곳, 비권장 업소 1310곳으로 비권장 업소 비중이 오히려 늘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2014년부터 금지업종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지만 민생과 직결된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금지요청 안내문을 배포하는 등 충분한 홍보를 거친 후에 규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dod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