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정부 대 비정부의 싸움…꼬리 잡히지 않게 하는게 정보기관”…법정서 공개된 ‘원세훈 녹취록’
뉴스종합| 2017-07-24 19:45
-2009~2012년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증거 채택, 법정 공개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66)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명박 정부 당시 총선과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라고 국정원 직원들에 지시한 정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원 전 원장이 온라인을 통한 대국민 심리전을 지시한 내용이 담긴 국정원 내부 회의 녹취록도 공개됐다. 검찰은 “국정원장의 그릇된 인식으로 소중한 안보자원이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사유화됐다”며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24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결심(結審) 공판에서 지난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작성된 ‘국정원 내부 회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는 원 전 원장이 자신이 주재한 전(全) 부서장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다. 검찰은 앞서 이 녹취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지만 보안상 이유로 주요 부분이 지워진 상태였다. 검찰은 최근 국정원으로부터 지워진 부분을 복구한 녹취록 원본을 건네받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원 전 원장 측이 동의하면서 녹취록은이날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됐다.

재판에서 공개된 녹취록에는 원 전 원장이 지난 2012년 총선 공천 과정에 개입하라고 주문한 정황이 드러나있다.

녹취록을 보면 원 전 원장은 지난 2011년 11월 18일자 회의에서 “12월 달부터는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니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챙겨보라”고 언급했다. 이어“제대로 된 인물이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현정부 대 비정부의 싸움이거든.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하는게 정보기관이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2009년 회의에서도 “내년 11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지부에서 잘 검증해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되겠나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녹취록에는 원 전 원장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온라인을 통해 선거 개입할 것을 지시한 정황도 나타나있다.

그는 지난 2011년 11월 18일자 회의 녹취록에서 “내년도에 더군다나 큰 선거가 두 개나 있는데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는 건 국정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온라인상에서 대처도 대처고 오프라인 쪽에서 대처도 대처고”라고 했다. 온라인 선거개입과 관련해 “(댓글에) 의견을 붙여놓으면 ‘SNS를 통해 괜히 시비붙는구나’ 하게 될 것이니 국사편찬위원장이나 교육과학기술과학부 장관 명의로 ‘사실이다 아니다’라고 하라”며 “그사람들이 (해명)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실어날라 주라”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2012년 총선 직후 열린 회의에서는 “우리 원에서도 하고 있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을 12국(심리전단국)하고 다 연결돼서 하고 있지요?”라고 물으며 “심리전이란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하다”고 재차 부서장들에게 강조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원 전 원장이 온라인 선거 개입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증거로 국정원 내부 문건을 제시했다. <4대강 사업-복지예산 감소 주장 강력 공방>이란 문건에는 ‘좌파들이 악소문을 유포해 공방이 필요하고 트위터를 통해 논지 전파, 재확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심리전단 주요 업무보고>라는 문건에는 ‘국정현안 대응’ ‘관련 정부 입장 옹호’ ‘좌파 무력화’ ‘사이버 전 전개’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원 전 원장은 “문건을 보고받은 기록이 없고 어느선까지 보고됐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이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국정원장의 그릇된 인식으로 소중한 안보 자원이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사유화되고 안보 역량의 저해를 초래했다”며 “이를 주도하거나 관여한 피고인들에 준엄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변론에 나서 “평생을 공직에 몸바치며 나라발전을 위해 책임을 다했던 사람을 이제는 보통사람의 일상으로 보내주길 간절히 바란다”며 울먹였다. 그는 “간부들과 한 달에 한 번 나라 걱정을 하며 나눈 이야기를 범죄로 보는 게 안타깝고, 여직원 감금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심리 전단 직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그는 “제가 수행한 많은 일들은 국가 안보와 국익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변론을 마치고 오는 8월 30일 오후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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