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표류하는 ‘평창 문화올림픽’
라이프| 2017-07-27 08:22
블랙리스트 여파 업무 공백 불가피하나
정책 기조ㆍ방향성 없이 각종 행사만 난무
‘팔걸이 원칙’ 함몰 가이드라인까지 실종 우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평창동계올림픽ㆍ패럴림픽을 200일 남짓 앞두고 문화올림픽 미디어간담회를 진행했다. 개최국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줄수 있다는 점, 분위기를 붐업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 때문에 각 개최국들이 공들여 준비한다. 문체부도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4년전부터 ‘문화올림픽’을 강조해왔다. 당연히 언론의 관심도 커, 현장에는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들어차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G-200에 발표한 평창 문화올림픽은 실망스러웠다. 문체부, 조직위, 강원도 등 3개 기관의 협력으로 150여개 문화 이벤트가 진행될 것이라 했지만 정작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문화올림픽을 꿰뚫는 정책기조와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ㆍ패럴림픽을 200일 남짓 앞두고 문화올림픽 미디어간담회를 진행했다. ‘문화올림픽’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것이라 설명했지만 정작 이같은 행사를 꿰뚫는 정책기조와 방향성은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간담회에선 강릉 카페거리에서 재즈 버스킹을 펼친다는 ‘강릉 재즈프레소 페스티벌’, 클래식음악의 향연인 ‘평창대관령 음악제’, 서울역 서울스퀘어 미디어파사드에서 진행하는 ‘청년 작가 미디어 아트’전, 전업작가 2018명의 작품을 일반인과 문학인의 글과 함께 선보이는 ‘아트배너전’ 등 개별 행사만 화려하게 열거됐다. 나무만 있고 숲은 보이지 않았던 셈이다. 문화올림픽 기간동안 공연과 전시의 비중이 어느정도 인지, 혹은 한국 전통문화와 동시대문화의 비중, 일반인도 참여가능한 국민참여형행사와 고급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행사는 어느정도나 가져가는지 등 전체 레이아웃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전체적인 행사의 기조라고 해야하나요, 방향성은 무엇입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인재진 평창 문화올림픽 총괄기획자는 “다양성과 연결입니다”고 했다. 그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질 수 있도록 판을 열어놓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인재진 총괄은 지난 4월에야 문화올림픽에 합류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건 때문에 수장이 없는 채로 수 개월을 보내야했던 문체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인 총괄의 답은 ‘최선’일지 모른다. 뒤늦게 합류한 그에겐 그간 진행돼오던 행사들을 포괄하면서 앞으로 행사를 기획해야하는, 다시 말해 남들이 반쯤 그려놓은 그림을 멋지게 완성하라는 미션이 떨어졌을테니 말이다.

냉정하게 보면 문화올림픽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문화올림픽에 올해 내년 문체부 예산이 약 370억원, 추경으로 강원도 문화올림픽 붐업 예산 약 150억원이 책정됐지만, 이 행사가 ‘난장’으로 치닫더라도 본 올림픽의 성공과는 큰 상관이 없다. 올림픽 기간동안 테러같은 큰 사고나지 않고, 한국이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고, 외국에서 온 선수들과 그 가족이 큰 불편 없이 잘 지내다 가는게 더 중요하다. 그 외 한국 문화의 저력을 알리고, IT강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평창을 국제적 관광지로 마케팅하는 등의 일은 부수적이다.

그러나 이 ‘부수’행사를 통해 올림픽 개최의 ‘본전’ 찾을 길을 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문화올림픽 성공사례로 꼽히는 런던올림픽이 그 예다. 부수행사를 부수적으로 바라보다간, 평창올림픽은 동계스포츠 선수들과 그 관계자들의 행사로 전락하고 만다. 게다가 2년뒤인 2020년엔 도쿄올림픽이, 2022년엔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좋든 싫든 평창올림픽과 비교될 수 밖에 없다.

큰 그림없이 표류하는 문화올림픽이 그저 문화올림픽에만 국한된다면 이 또한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블랙리스트 청산을 기치로 출발한 도종환 장관의 문체부 방향성도 이와 같을까 우려스럽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정책 기조도 방향도 없이 그저 지원하는 기관으로만 전락하지는 않을지. 문체부 한 관계자는 “우리는 관제행사를 치르는게 아니다. 행사가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문체부 역할이다”고 했다. 그렇다. 문화올림픽은 관제행사가 아니다. 그러나 방향성 없는 행사들이 난무하는 게 한국문화라며 보여줄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정책적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 도장관의 문체부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험대에 섰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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