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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카페]악의 해부조엘 딤스데일 지음, 박경선 옮김에이도스
라이프| 2017-07-28 11:29
“악마 같은 모습은 전혀 없었다. 마치 겁이 나서 급여 인상도 요구하지 못하는 회계사처럼 보였다”

나치 전문 연구가 지몬 비젠탈은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맡았던 홀로코스트의 주인공 아돌프 아이히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죽 지켜본 한나 아렌트도, 아이히만은 전혀 괴물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직무의 형식적 측면들을 즐기는 흔한 공무원에 불과했다고 했다.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가 괴물도, 사이코패스도 아니라면 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 측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범죄인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포로수용소와 전범 재판이 열렸던 뉘른베르크로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를 파견했다. 정신과 의사 더글라스 켈리와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는 당시 최신 심리검사 기법으로 알려진 로르샤흐 잉크반점 검사를 비롯, 숫자폭 검사, 기억력 검사, IQ검사 등 다양한 검사와 함께 지속적 관찰을 통해 전범들의 심리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조엘 딤스데일은 어느 날, 40년 전 자신이 뉘른베르크 사형집행인에게 했던, 나치전범들을 연구하겠다는 약속을 떠올린다. 딤스데일은 당시 목격자와 연구자들이 남긴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아내고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은다. 그는 이를 토대로 나치 전범 넷을 집중 조명해 나가면서, 악의 실체는 무엇인지 탐색해나간다.

1961년 아이히만의 재판은 다양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에 불을 붙였다. 그 연구의 출발점은 악의 평범함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한나 아렌트였다. 아렌트는 악한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관료제 시스템에 들어있는 평범한 인간의 ‘생각없음’이 엄청난 파멸을 불러왔다고 봤다.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란 도발적인 실험을 통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행하도록 지시를 받으면, 실제로 지시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줬다. 필립 짐바르는 감옥실험을 통해 권력과 역할을, 존 달리와 빕라타네는 방관자가 많을 수록 사태에 무관심해진다는 실험을 통해 악은 인간의 악한 본성보다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전범들을 가까이서 관찰한 더글러스 켈리의 주장과 맞닿는다.

저자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범들에게서 사이코패스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멀쩡한 정신의 가면을 뒤집어쓴, 규칙과 법을 밥먹듯 어기면서 어떤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 사이코패스들이 보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서적 몰입과 공감 능력 부재가 나치 전범들의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공명영상과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그렇다고 ‘나쁜 뇌’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볼 수는 없다.

저자는 사람들은 악이 한 가지 색깔이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악의 기저에 여러행동과 장애의 스펙트럼이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악의 탐색 여정은 시원한 한 방은 없지만 집단적으로 악이 곰팡이처럼 번지는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이해와 기억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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