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프리즘]포퓰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사이에서 줄타기
뉴스종합| 2017-08-17 11:08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쳐 기대와 열망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17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불과 석 달 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새 정부의 움직임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듯 숨 가빴다. 마치 밀린 숙제라도 끝내려는 듯 하루가 멀다 하고 우선순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의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쏟아졌다.

경제정책 부문 만으로도 탈 원전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8ㆍ2 부동산 대책, 갑-을로 대변되는 불합리한 기업 문화 철폐 등이 차례로 발표됐다.

10년 보수 정권을 거쳐 탄생한 진보정권이기에 내놓는 정책마다 선명성이 분명하게 부각된다. 대체로 피아(彼我)가 분명하다. 기득권과 비기득권간의 구도를 공통으로 하고, 다수를 점하는 비기득권의 이익에 보다 가깝게 설계돼 있다.

이런 새 정부의 지향점은 정권 초반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정책 청사진이 공개된 현재까지도 지지율은 줄곧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급 지지율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영 불안하다. 극도로 양극화된 사회의 단면이 투영돼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이미 1대9 혹은 2대8로 갈린 사회로 평가받는다. 다수가 원하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울 때 지지율 유지가 보다 수월해지는 구조다. 국정농단과 탄핵을 유발한 전 정권과의 차별화는 기저 효과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다수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칫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미 탈 원전과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논란에선 이런 징후가 옅보인다.

청정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탈 원전은 반대 논리가 강하게 제기되자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결정의 책임을 미뤘다. 사실상 여론에 에너지정책의 존폐를 물은 것과 다름없다.

부자 증세로 요약되는 소득세ㆍ법인세 인상 정책에선 보편적 과세의 목소리가 묻혔다.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178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자 증세뿐 아니라 보편적 증세 없이는 재원 조달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다수의 서민이 반대하는 조세 저항을 우려하는 듯하다. 보유세 논의가 빠진 부동산 대책 또한 다주택자들 만을 주타깃으로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연구소 브루킹스 연구소는 ‘프로페셔널리즘을 늘리고 포퓰리즘을 줄이자(More professionalism, less populism)’는 제목의 칼럼을 냈다. 이기적인 시민들은 본인과 이해관계가 없을 땐 합리적으로 무관심하고, 이해관계가 얽힐 땐 비합리적으로 강하게 반발한다는 게 골자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객관적 검증과 식견이 중요하다.

정권 초기 청와대의 모습은 포퓰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는 것 같다. 이미 한 차례 국정 운영경험이 있는 그들이기에 전문가적 식견이 충분하리라 믿고 싶다. 훗날 오늘의 모습이 부디 포퓰리즘의 발현으로 평가받는 불행한날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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