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아따블르)
[2017 코릿-맛을 공유하다] 평양냉면에 중독됐어요…슴슴한 ‘무미(無味) 세계’에 반했다
라이프| 2017-09-21 09:31
-노포들 성지였던 ‘평양냉면’ 젊은층에 인기
-주말에는 젊은이들 ‘평냉’ 맛집 투어하기도
-올 코릿 톱50에도 필동면옥 등 6곳 이름 올려
-계보를 잇는 ‘평냉’의 스토리텔링도 즐길거리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당신은 평양냉면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평양냉면의 맛을 아시나요. 평양냉면의 매력은 뭔가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 평양냉면을 사실 잘 몰랐다. 단지 슴슴하다(맛이 좀 싱겁다는 뜻의 북한말)고 하는데 슴슴한 맛이 뭔지 모르겠다. 단지 밍밍할 뿐이다.

TV 맛집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는 평양냉면의 첫 맛을 “걸레 빤 맛이었다”고 했다.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평양냉면 첫 느낌은 그와 유사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겠다.

배건석, 최혜림 작가는 ‘냉면열전’ 본문 중에 “희스무레하다, 밍밍하다, 슴슴하다, 도대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vs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 어떤 음식보다 강렬한 중독성이 있다”고 적었다.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맛 본 사람은 대부분 ‘냉면열전’의 이야기처럼 ‘이게 뭐지’, ‘아무 맛도 없는데 왜 비싸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혀 끝을 감치는 국물에 쫄깃한 면발의 어울림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뒤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참 오묘한 음식이다. 

노포들의 성지였던 필동면옥. 이제는 ‘평냉 힙스터’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슴슴하면서 밍밍한 맛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젓가락을 놓고 뒤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게 만드는 평양냉면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평양냉면은 ‘무미(無味)’의 대명사 격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달고 짜고 기름진 맛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라면 평양냉면 한 젓가락에 인상을 찌푸릴 만 하다.

평양냉면 인기 전에는 냉면이라 함은 ’함흥냉면‘이었다. 새콤달콤하고 칼칼한 맛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그때까지 평양냉면은 ‘어르신들만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바뀌었다. 최근 한 입맛 한다는 사람들은 냉면 성지처럼 평양냉면 맛집을 찾아 다닐정도로 대표적인 맛집으로 부상했다. 바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밍밍하고 슴슴한 맛’ 때문이다.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 씨는 “한국의 음식들은 외식시장을 중심으로 짜고 맵고 달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슴슴하면서 밍밍한 무미에 가까운 평양냉면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큰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일종의 반작용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양념과다 음식이 크게 번지면서 그 지겨움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사실 냉면은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주홍글씨를 벗지 못했었다. 우리에게 냉면은 단 두가지였다. ‘물냉’과 ‘비냉’이다.

다소 거칠지만 냉면의 매력을 배가시켜주는 봉피양의 ‘평양냉면’. ‘평냉’ 초보자들도 거리낌없이 즐길 수 있어 평양냉면 맛집으로 새롭게 뜨고 있다.

그리고 냉면은 음식의 서브 역활을 해왔지 메인은 아니었던 게 사실이다. 삼겹살을 먹고 입가심용으로 ‘물냉’을 외쳤다. 일부러 몇점 남긴 고기를 한 점 올려 졸깃한 냉면과 감싸 먹어야 고기를 제대로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이 무미의 냉면, 그 중 평양냉면은 젊은층에 더 크게 어필하면서 시내 곳곳에 평양냉면 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최근 서울 충무로에 있는 ‘필동면옥’을 찾았다. 점심시간은 번잡하다고 해서 좀 앞당겨 도착했지만 벌써 십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10여년 전 평양냉면집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것은 같지만, 젊은층들이 확실히 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50~60대 중장년층이 추억을 음미하기 위해 왔던 곳이라면 지금은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식사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는 모습, 이것이 2017 평양냉면집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모(여ㆍ27) 씨는 “10대 때는 매콤한 함흥냉면을 선호했었는데 먹고 나면 입이 텁텁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두세번 먹고 나니 자꾸 생각났다”며 “부드러우면서도 속살만 미묘하게 쫀득한 메밀면 그리고 꼬들꼬들한 수육을 한 접시 시켜 메밀면으로 감싸 입안에 넣으면 그야말로 행복에 젖어든다”고 했다.

딸과 함께 찾은 신모(54ㆍ여) 씨도 “젊었을때 자주 찾았던 곳”이라며 “지금은 딸과 함께 그때 그 추억을 느낄 수 있어 자주 들른다”고 했다.

평양냉면의 세계에도 강호의 최강자는 존재하는 법. 미쉐린 가이드를 표방하는 2017 코릿(KOREAT) 맛집 랭킹50에는 평양냉면 집이 6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한 입맛’한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우래옥’, ‘필동면옥’, ‘을밀대’, ‘을지면옥’, ‘평양면옥’ 등이다.

사실 평양냉면은 ‘실향민의 음식’이다. 현재 평양냉면 맛집들 역시 실향민이 북한 땅을 마주보며 가게를 시작해 대를 이어가고 있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차가운 냉면 국물에 말아먹는 평양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평양에선 음식에 양념을 적게해 담백한 맛을 즐긴다. 그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이 전국 각지에 자리잡고 평양냉면 장인의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평양냉면은 그들만의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평양면옥은 의정부와 장충계로 나뉜다. 의정부계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 의정부 평양면옥을 필두로 첫째 딸은 필동면옥, 둘째 딸은 을지면옥, 셋째 딸은 본가필동면옥을 맡게 된다. 장충계는 어머니와 큰아들이 장충동 평양면옥을 운영한 후 둘째아들은 논현동 평양면옥, 딸은 분단 평양면옥, 큰아들의 사위는 도곡동 평양면옥을 운영한다.

계파까지 나뉘어지는 이 독특한 가족 경영 시스템은 고객의 호기심을 끌었고, 대를 이어 ‘장인 정신’을 냉면 한 그릇에 담아 ‘가문의 영광’을 노린다는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서 평양냉면이 부활음을 알린 것이다.

노포의 성지가 된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면서 전문 식당 역시 크게 늘었다. 최근 개업한 서울과 수도권 일대 냉면집은 이미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최근 젊은 평양냉면집은 강남과 홍대 등 젊음의 거리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1980년대말 대학가에서 민중가요로 불리던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노랫말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전통의 맛을 볼 수 없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평양냉면 전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다.

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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