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아따블르)
[2017 KOREAT 맛을 공유하다-평양냉면 無味에 취하다]“평양냉면 깊은 맛 느끼고 싶다면 식초는 국물보다 냉면에 뿌려 드세요”
라이프| 2017-09-21 11:40

김태현 벽제외식산업개발 부회장

“메밀은 중국산이 더 좋은거 아시나요?”

‘재료는 국산을 쓰시죠’라고 질문하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불쑥 튀어나온다. ‘메밀’하면 봉평만 떠올렸던 기자는 일순간 멍했다.

당황한 기자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김태현 벽제외식산업개발 부회장은 중국 메밀이 더 좋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중국산 메밀이 열에 더 잘 견뎌요. 척박한 땅에서 자란만큼 국산보다 더 강한거죠. 이북땅인 함흥과 평양냉면이 유명한 이유도 같은 거에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조건 한국 상품이 좋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겁니다”라고 했다.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했다.


최근 봉피양 본점이 있는 방이동에서 만난 김 부회장은 한식을 산업화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김영환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과 함께 평양냉면과 소ㆍ돼지갈비, 설렁탕 등 토속적인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벽제갈비를 거대 외식산업 브랜드로 키워냈다. 봉피양은 전국에 점포가 10여개, 벽제갈비도 6개에 달한다. 대부분 점포는 직영점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보니 이날 대화는 한식 자체 보다는 ‘한식 산업’에 대한 주제로 흘렀다. “좋은 재료는 맛의 기본입니다. 재료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김 부회장과의 대화 중 가장 귀를 사로잡은 것은 한식에 대한 지론이었다. “한식 본연의 가치를 우리만의 맛에 두고 시대에 맞게 풀어가야 합니다.”

한국식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보다는 최고의 맛, 최선의 입맛을 제공하는게 더 의미있다는 뜻이다.

최신화된 도구와 깔끔한 매장 디자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모든 벽제갈비 매장은 일본에서 공수한 화로를 씁니다. 육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재료는 국내산을 쓰지만요. 일본산 화로는 불이 적절하고 로스터의 완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벽제갈비가 사용하는 화로는 이렇듯 벽제외식산업개발의 음식 철학이 담겨 있다. 한국적인 맛, 토속적인 맛을 강조하되, 마냥 한국의 것만의 고집에서 벗어나는 것. 최고의 맛을 위해서라면 일본산 화로 들여오는 것을 마다 않는 것. 그게 진정한 ‘맛의 프로’라는 것이다.

평양냉면에 국산 대신 중국산 메밀을 활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란다. 국산이란 허울좋은 구실보다는 ‘소비자가 느끼는 맛’이 가장 중요하단다.

재료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조리과정 자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최근 ‘슴슴한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평양냉면도 마찬가지다. 평양냉면만 65년을 고집해온 김태원 명인이 봉피양의 평양냉면 국물을 직접 제조한다. 김 명인은 육수에서 고깃기름을 제거하는 데 입바람을 활용한다. 기계와 손을 활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했을 때 냉면육수 특유의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더욱 뚜렷해진다고 한다.

김 부회장 역시 평양냉면에 애정을 쏟고 있다. 사업에 발을 들인 것도 평양냉면이었다. 면을 빚고 직접 내려 냉면을 만드는 과정을 손수 담당해왔다.

“항상 내 아이가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만듭니다. 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모든 사람이 믿고 좋아하며 먹을 수 있으니까요.”

오랜시간 공을 들여온 설렁탕, 짜지 않은 맛이 특징인 저염김치도 마찬가지로 김 부회장은 정성을 기울인다.

그에게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는 법을 물었다. “이거 아무나 안가르쳐 주는건데…”하며 장난스런 표정을 보이다 이내 비결을 털어놓는다.

“식초를 국물보다 냉면에 뿌려서 먹어보세요. 평양냉면의 국물에는 정성이 담겨져 있거든요. 식초가 국물에 닿으면 슴슴하고 깊은 국물맛이 엉망이 돼버리곤 합니다.”

냉면 국물, 맛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김성우 기자/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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