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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5년만에 잡은 사기꾼 왜 풀어줘서”…도피중 또 범행, 피해자만 ‘눈덩이’
뉴스종합| 2017-09-28 09:57
-檢 불구속 수사 결정에 피의자는 6년째 잠적
-장기간 기소중지에 피해금액은 계속 늘어나
-주범 잠적한 사이 피해자들끼리 소송전 하기도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사건 5년 만에 붙잡힌 피의자가 불구속 수사가 결정된 틈을 타 도주하며 6년째 범행을 이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상태가 계속돼 전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검거 소식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경기 과천에서 세무사로 일하는 김모(70) 씨는 지난 2007년 은퇴를 위해 경기 과천에 소유하고 있던 32억원 상당의 땅을 내놓았다. 그러나 땅을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던 김 씨의 꿈은 한 사기꾼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사진=123rf]

자신을 한 건축업체의 전무라고 소개한 최모(51) 씨는 김 씨에게 “땅을 사서 빌라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당장 공사비가 없다”며 “땅을 담보로 공사대금을 대출받게 해주면 계약금 4억원을 내주고 남은 돈으로 빌라를 지어 분양하고서 갚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땅값보다도 큰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최 씨의 말은 결국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중도금은커녕 계약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채 최 씨가 잠적하면서 김 씨는 10년 넘게 사기 피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피해금액만 20억에 달하는데다 땅은 짓다 만 건축물이 남아 다른 투자자들의 싸움터로 바뀌었다.

최 씨의 범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도주하면서도 김 씨의 땅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며 비슷한 수법으로 20명에게서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가로챘다. 결국,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경찰과 검찰에 최 씨를 고소했고 최 씨는 결국 도주 5년 만인 지난 2011년 경찰에 검거됐다.

그러나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여러 사건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검찰이 최 씨에게 불구속 결정을 내린 것이다. 최 씨가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회사 전무라는 직업상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풀려난 최 씨는 불구속 결정 2주 만에 다시 잠적했다. 결국, 소재불명을 이유로 검찰은 최 씨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리고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최 씨는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피해자인 김 씨가 사건 5년 만에 받은 것도 검찰의 기소중지 결정서 한 장 뿐이었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검찰 관계자는 “기소중지의 경우에는 분기마다 기소중지자 소재수사를 한다”며 “해당 사건에 대해서도 계속 소재 파악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건이 기소중지 상태로 6년여 가까이 지체되는 동안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최초 피해자인 김 씨는 땅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아직까지 소송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008년 최 씨로부터 사기 피해를 본 피해자 최모(55) 씨도 비슷한 수법으로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 5억원을 모두 빼앗겼다. 살던 집과 땅까지 빼앗긴 그는 현재 창고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 최 씨는 “5년 만에 잡은 상습사기꾼을 검ㆍ경이 왜 풀어줘 놓고 아직 못 잡고 있는지 분통이 터진다”며 “자기 돈을 잃었다면 이렇게 체포를 안 할 수가 있느냐”고 호소했다.

도망 중에도 최 씨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경기 성남에서 최 씨로부터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가 나타났고, 용인에서도 최 씨로부터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현재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피해자들도 사건이 길어지면서 모임을 만들어 대응에 나섰다. 김 씨는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며 피해를 키웠다”며 “답답한 마음에 직접 나섰다”고 설명했다.
피의자의 소재를 찾지 못하는 등 수사를 종결할 수 없을 때 내리는 중간처분인 ‘기소중지’에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0만5638명이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고, 매년 인원수가 증가해 지난 2015년에는 12만8283명을 기록했다. 대부분 사건이 1년 내 사유가 해제되면서 수사가 종결되지만, 김 씨의 경우처럼 몇 년씩 시간이 걸리는 장기 사건도 상당수 있다. 심지어 기소중지 중에 공소시효가 끝나 기소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소중지의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지는 않기 때문에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복구할 방법이 없다”며 “특히 금융범죄는 빠른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피해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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