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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포럼]집약식 축산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뉴스종합| 2017-10-12 15:30
문홍길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

필자는 소위 도시빈민의 아들로 유년기를 보냈다. 없는 집안에 애들은 세 명이나 있었으니, 부모님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생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황달기와 더불어 버짐이 허옇게 피었다. 영양실조라고 했다. 아무 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동생을 위해 어머님은 달콤한 청량음료 한 병을 사오셨다. 병 옆에 소주잔을 하나 두시고는 조금씩 먹게 했는데, 형과 나는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대학에서 가축영양학을 전공한 나는 그 청량음료가 영양실조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본다. 쓴 웃음이 난다. 그래도 고기는 가끔 먹곤 했다. 어머니는 육소간이라 불리는 정육점에서 살점은 하나도 붙어있지 않는 돼지비계를 사오곤 하셨다. 무를 듬뿍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함께 푹 끓이면, 벌건 기름이 둥둥 뜨는 기가 막힌 고깃국이 된다. 지금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나지만, 애들이 안 먹을 것 같아 시도해 본적은 없다.

5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필자는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속하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소비량만큼 1년에 소고기 11.6kg, 돼지고기 24.4kg, 닭고기 15.4kg, 계란 268개를 먹을 것이다. 가끔씩은 회식 후 불에 탄 고기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냥 놔두고 나오기도 한다. 영양실조에 걸렸던 동생이나 필자는 이제 고지혈증도 있고, 옛날에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뱃살도 좀 나왔다. 불과 40여년 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전반적인 경제성장 등 여러 요인을 들 수 있으나, 분명한 한 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논란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집약식 축산 덕분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항상 나에게 너무 잘 해주었는데. 당신의 눈을 볼 때면, 거짓말을 계속 할 수가 없어요.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더 이상 숨길 수는 없어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열병 때문에 한때 서로 사랑하고, 나에게 너무나도 잘 해 주었던 연인에게 어렵사리 이별을 고백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록그룹 ‘조지 베이커 셀렉션’의 ‘I’ve been away too long’ 이란 노래가사의 일부분이다.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해봤다. 노랫말속의 연인이 그랬듯이 너무 매몰차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한때는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이가 아니던가. 또한 누군가는 오히려 더 잔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해서도 안 된다. 상대방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집약식 축산도 마찬가지다. 모든 죄악의 온상인양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줬고, 영양실조를 치료해 주었다. 동물복지와 환경을 고려한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나, 집약식 축산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차분히 떠나보내야 하고, 새로운 생산방식을 맞이할 준비의 시간도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한 국가의 모든 생산시설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게 옳았고 지금은 이게 옳은 것이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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