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단풍보다 더 화려한…삼청로, 예술로 물들다
라이프| 2017-10-16 11:32
갤러리현대·학고재 등 4개 화랑
란 스튜디오서 삼청 파출소까지
英·獨·美 현대미술 거장 개인전


지금 삼청로의 주요 갤러리들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개인전이 한창이다. 스타들의 총출동이란 말도 아깝지 않다. 란 스튜디오를 시작점으로 삼청 파출소까지 이르는 길, 놓치면 두고 두고 아쉬울 전시들을 헤럴드경제가 선별했다. 

갤러리현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All in All’ = 삼청로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현대는 영국 개념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76)의 개인전 ‘올 인 올(All in All)’을 11월 5일까지 개최한다. 한국에서 여는 5년만의 개인전으로 신작을 포함한 30여점의 회화가 나왔다.

1973년 작가는 평범한 선반에 올려진 유리잔을 “이것은 참나무”라는 글과 함께 제시(참나무ㆍAn Oak Tree), 참과 거짓의 이분법을 넘어선 현대예술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철학적인 질문으로 당시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 작품 ‘샘’(Fontaine, 1917) 이후 또 하나의 기념비적 개념미술로 평가 받는다.

이번 전시에는 현시대를 표상하는 아이템들이 나왔다. 아이폰, 맥북, 테이크 아웃 종이컵, 블루투스 헤드폰 등이 일부분만 확대해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더이상 쪼개질 수 없는 상태’로 선보인다. 검은 윤곽선으로 그래픽 이미지처럼 단순화한 소품들을 연관성 없는 밝은 단색으로 표현, 익숙한 것들의 낯선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영국 현대미술가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의 스승이기도 하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 재직시절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흉, 트레이시 에민 등을 가르쳤다. 

학고재갤러리, 팀 아이텔 ‘멀다. 그러나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금 지나면 한옥을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학고재갤러리에 도착한다. 학고재갤러리는 독일 현대미술작가인 팀 아이텔의 개인전을 6년만에 열고있다. 팀 아이텔은 신(新)라이프치히화파의 대표작가로, 구상회화가 강했던 동독과 추상성이 강했던 서독의 화풍이 더해진 스타일이 독특하다. 전통유화 특유의 질박한 느낌이 살아있으면서도 화면분할 방식에선 추상성이 도드라진다.

전시에 선보이는 모든 작품은 최근 1년간 작업한 것이다. 학고재갤러리 본관의 구조에 맞춰 작품의 크기와 위치, 갯수를 미리 결정한 뒤 제작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크고 작은 그림이 섞여있는 전시장을 돌다보면, 전시장의 여백마저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차분하고도 따뜻한 색감은 언뜻 미국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작가에게 색감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의 색에 주목했던 호퍼와 달리 나의 그림은 늘 변한다. 이전작품은 훨씬 어두웠고, 지금은 많이 밝아졌다.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팀 아이텔은 2015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유명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회화과 최연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국제갤러리, 폴 매카시 ‘Cut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국제갤러리에선 미국출신의 세계적 현대미술가인 폴 매카시(72)의 개인전이 진행중이다. 2012년 이후 5년만의 한국전이다.

‘컷업, 그리고 실리콘, 여성우상, 화이트 스노우(Cup Up and Silicone, Female Idol, WS)’를 제목으로 내건 전시엔 5년전 한국에서 선보였던 백설공주 시리즈의 번외작 격인 ‘화이트 스노 헤드’와 프란시스 피카비아(프랑스ㆍ1879-1953)의 ‘여인과 우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피카비아 아이돌’연작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본 떠 만든 ‘컷 업’시리즈가 출품됐다.

가장 흥미로운 건 ‘피카비아 아이돌’ 시리즈다. “어느날 스튜디오에 놓인 ‘코어(실리콘 조각 제작을 위한 뼈대)’를 보는데, 그 추상화된 형태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코어의 의미를 깨닿는 순간 내부로의 추상이 일어났다”는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실리콘 조각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어’를 추상 조각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 ‘코어’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코어의 코어’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인 것이다.

‘컷 업’시리즈도 B급 호러물이 떠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상당하다. 신체를 예리한 칼로 난도질 한 듯한 이 작품들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세계의 폭력성을 작품에 투영했다. 폭력 이미지를 부인하거나 돌려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10월 29일까지. 

바라캇 서울, 엘 아나추이 ‘관용의 토플로지’=150년 전통의 글로벌 화랑 바라캇의 서울 분점인 바라캇 서울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 아나추이(73)의 첫 한국 개인전을 연다.

엘 아나추이는 병뚜껑 등 알루미늄 조각을 구리 끈으로 엮어 금속 태피스트리처럼 만들고 이를 구기고 접어 변형시킨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식민시대 반 강제적 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된 술병 뚜껑을 활용한 그의 작품은 아프리카 ‘후기 식민주의’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엔 베니스비엔날레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에선 금속 태피스트리 신작을 비롯 프린트 등 작가의 대표작 9점이 선보인다. 특히 프린트 작품들은 초창기 작가가 작업했던 나무접시와 병뚜껑을 접기 위해 바닥에 까는 목판을 차용했다. 수백 혹은 수천의 병뚜껑이 접혔던 목판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쌓였다.

작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물건엔 그 사람의 DNA가 남는다고 믿는다. “버려진 물건들과 이를 활용해 만든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간에 연결고리가 생겨난다. 일종의 역사, 이야기가 남아 있기에 서로 연결되는 것”이란다. 그의 작품은 마을 주민들의 노동으로 완성된다. 11월 26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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