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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환수 피하려다…재건축 ‘속도전의 덫’
부동산| 2017-10-17 11:32
한신4, 시공사와 협약안은 부결
일처리과정 허술 무더기 무효표
무리한 일정 ‘줄소송 뒷탈’ 우려


재건축 사업들이 오로지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산에 중요한 결정을 미칠 의사결정까지 ‘날림’으로 처리되면서 줄소송은 물론 사업차질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서울 서초구 한신4지구 재건축 조합이 지난 15일 개최한 조합원 총회에서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GS건설을 공동사업시행사로 선정하는 투표안건(1-1 안건)은 통과됐는데, GS건설과 협약을 맺는 안건(1-2 안건)은 부결됐다. 1-2 안건은 총 2611표 가운데 찬성 1050표, 반대 271표, 기권/무효 1290표를 얻었다.

한신4지구 투표용지

무더기 무효표는 황당한 투표 문항<사진> 때문이다. 조합은 1-2 안건으로 ‘1-1에서 기표한 건설사와 협약을 체결하겠는지’를 물었다. 1-1에서 GS건설에 기표하지 않은 조합원들의 표가 대거 무효 처리됐다. 문제는 GS건설이 얻은 표는 1359표기 때문에, 이 조합원들만 제대로 투표했어도 1-2 안건은 찬성이 과반을 넘길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약 300명이 모순되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조합원들이 총회 안건에 대해 제대로 숙지못한 상태에서 투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나이 든 조합원들이 많아서 사업 내용이나 안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1-2 안건은 아예 찍지 않은 사람도 많다”며 “조합이 문항을 잘못 기재한 탓도 있지만,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잘못도 크다”고 지적했다.

어설픈 조합의 일처리 때문에 초과이익환수제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재건축 조합들이 연말까지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하기 위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기 때문이다.

송파구 미성ㆍ크로바 재건축 총회에서는 일부 조합원들이 “건설사의 제안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조합 측은 시간이 없다며 시공사 선정 투표를 강행했다. 반포주공1단지는 이사비 문제가 명확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시공사 선정이 이뤄졌다. 시공사 선정도 하지 않은 채 조합원 분양 신청부터 하려다가 당국의 제지를 당한 조합도 있었다.

시공사 선정을 마친 조합들은 조만간 조합원 분양 절차에 착수할 예정인데, 보통 두 달이 걸리는 이 절차를 법정 최소 기간인 30일만에 해치울 계획이다. 그 이후 이뤄지는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시공사와의 본계약은 일주일만에 해내야 한다. 최근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개포주공1단지는 해당 절차에 반년 가까운 시간을 들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남은 절차는 조합원들의 권리나 재산 배분에 매우 중요해 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해도 소송이 많이 제기되는 절차”라며 “기존 정비업계 상식대로라면 초과이익환수를 피할 수 없는 사업들이 세금을 안내려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부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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