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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토끼와 거북이…그리고 병풍과 패싱
기사입력 2017-10-23 11:31 작게 크게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는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흙수저(거북이)와 금수저(토끼)의 경쟁 구도에 대한 이야기다. “내 할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면 종국에는 승자가 된다”는 믿음(?)을 준다. 흙수저(거북이)도 열심히 하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일게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칙은 다른 말을 들려준다. 현대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양극화된 현대 한국사회의 단면에선 더더욱 그렇다.

타고난 빠른 발을 갖고 있는 토끼가 마냥 낮잠만 자고 있을리 없다. 설령 낮잠을 늘어지게 자더라도 토끼는 그 빠른 발을 이용해 거북이를 쉽게 추월해 나갈 것이다. 거북이가 낮잠은 커녕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앞만 보고 느릿느릿 기어간다한들 토끼가 낮잠을 자는 곳까지 가는 것도 역부족이다. ‘토끼와 거북이’는 결국 거북이들에게 헛된 환상만 심어주는 고도의 장치라는 말도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부모세대 보다 더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감성적인 문구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된다.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 “진짜 아프니까 약을 달라”고 한다. 아픈 것조차 사치인 흙수저 거북이들은 취업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다.

그런데 현실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속도를 높이기만 하는 청년실업률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다.

가뜩이나 온 몸에 상처기가 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더 서글픈 얘기도 있다. 마지막 보루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이 병풍이 되고, 아니면 아예 그들을 지나쳐가는(패싱ㆍpassing) 현실에 맞닥뜨린다. 백 없고, 돈 없으면 번듯한 직장을 얻는 것조차 힘들다는 게 엄살이 아닌 현실이다.

지연ㆍ학연ㆍ스펙에 상관없이 능력만으로 채용하겠다는 ‘블라인드 채용’은 공허하기만 하다. 취업청탁에 음서제(蔭敍制)에 매관매직(賣官賣職)의 망령은 현대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곳곳에서 채용비리가 자행되는 현실앞에 힘 없는 흙수저들은 또 한번 좌절한다. 거북이는 영원한 패자가 되고, 토끼는 영원한 승자로 남는다. 거북이는 사회의 첫 출발선상에서, 마지막 보루라는 취업에서조차 좌절을 먼저 배운다.

그러니 ‘공정한 경쟁’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100야드 달리기 경주 운운하며 “묶인 사람에게 40야드의 차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정의가 아닐까”라며 기회의 균등을 역설한 린든 존슨(미국 36대 대통령)은 현실에선 환상이 된다.

또 다른 얘기도 있다. 고전소설 ‘토끼전’(별주부전)에선 토끼가 흙수저다. 토끼는 자라의 꾐에 넘어가기도 하고, 온갖 위기에 맞서며 간신히 생(生)을 이어가는 미천한 흙수저다. “수궁에는 총이 없다” “수궁에 가면 벼술은 사닥다리 올라가듯, 일등미색(一等美色)은 청개구리 뒤에 실뱀 따라다니듯 할 것”이라는 자라의 꾀임은 달콤한(?) 환상이 된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불구대천지원수’ 총이 없다는데 어떻게 안넘어갈 수 있겠나. 게다가 사닥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는데…

그런 토끼나 거북이에게 병풍과 패싱은 현재의 언어고, 공정한 경쟁이나 사다리는 꿈의 언어다. 그런데 AI(인공지능)를 얘기하고, 4차 혁명을 꿈꾸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닥다리 과거의 언어다. 진짜 아픈 청춘들에게 약을 주기는 커녕, 과거의 언어만 양산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hani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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