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아따블르)
[피플 & 스토리] 육수에 빠진 셰프 ‘紅緣’을 디자인하다
라이프| 2017-11-10 11:19
인테리어 디자이너 꿈꾸다 ‘요리사의 길’ 정수주 대표주방장 “광동지역 돼지고기 육수 고집스런 10년…고객 입에 착착 감기죠”

“진짜 반려자는 태어날 때부터 새끼 손가락에 ‘붉은 실’이 이어져 있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2008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저층 로비에 들어선 중식당 ‘홍연’(紅緣)은 이런 의미를 지닌다. 홍연에서 만난 모든 인연은 꼭 성공하고 화촉을 밝히게 되며 오래도록 그 기운이 함께 한다는 뜻이다.

홍연의 전신은 1993년 조선호텔 20층에 들어섰던 호경전(豪景殿)이다. 호경전은 2008년 리모델링을 거쳐 광동식 요리를 본격 선보이기 위해 홍연으로 새단장을 했다. 홍연은 다른 중식당과는 달리 광동지역에서만 나는 돼지고기를 오래 우려낸 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수주(47) 홍연 대표주방장은 2008년 홍연 오픈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대표 주방장의 자리에 올랐다. 홍연의 10년 역사를 함께 해 온 정 주방장을 만나 봤다. 

정수주 홍연 대표 주방장. 그의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하지만 셰프가 됐다. 발품을 파는 건강한 식재료는 그의 원칙이자, 포기할 수 없는 음식 철학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인테리어 디자이너’ 대신 ‘요리사’가 되다=화교 출신인 정 주방장은 유명 중식당 동성관(東成館)을 운영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꿈은 원래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대학입학 시험을 보고 합격을 기다리는 동안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에 들어가서 잠깐 견습생활을 했다. 당시 도림의 부주방장이 큰 매형의 친구여서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었다.

“견습 6개월 간 15만원을 받고 일했어요. 당시 정직원 월급이 한달에 70만~80만원 정도였으니 엄청 적었죠. 그러다가 1년이 지났고, 요리에 재미가 붙었어요. 요리도 하나의 예술이고 디자인이란 생각이 들어 요리사가 되기로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견습생활 중에 대학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어머니가 요리사가 되게 하려고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셨더라구요.”

정 주방장이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칼판’의 매력 때문이다. 요즘 주방장은 ‘불판’ 출신이 핵심이지만, 예전에는 칼판 출신이 실세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예전에는 메뉴판이 없었어요. 4명이 와서 30만원에 맞춰 달라고 하면, 가지고 있는 재료를 고려해 메뉴를 서로 조율했는데, 그게 되게 멋있어 보였어요. 나도 칼판이 돼서 메뉴를 조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곁에서 양파까기 등을 몸소 익혀온 그는 도림에 이어 뉴월드호텔, 힐튼호텔 등을 거쳐 1995년 조선호텔에 입사해 호경전에서 일을 했다. 윗 선배가 이직을 하면 자연스레 함께 직장을 옮기던 때였다. 중간에 잠시 호경전을 떠났다가 2004년부터 다시 호경전에서 일했다. 2008년 홍연이 리모델링 후 새로 오픈할 때부터 홍연에서 계속 일해왔다.

홍연의 매력?…광동식 육수ㆍ건재료ㆍ두부=그가 홍연에 갖는 애착은 남다르다. 홍연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데다 이곳에서 ‘대표 주방장’이 됐기 때문이다. 정 주방장은 홍연의 가장 큰 특징으로 ‘육수’를 꼽았다. 한국의 다른 중식당에서는 안쓰는, 굉장히 끈적거리는 고가의 비싼 육수라고 했다. 이 육수는 홍연이 오픈하기 3~4년 전 호경전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중국 광동지역에서만 나는 돼지고기 다리를 말려서 육수를 냅니다. 그 햄을 갖고 8시간 동안 육수를 끓이죠. 이 육수의 절반은 짬뽕을 비롯한 식사용으로 쓰고, 나머지 절반은 노계와 햄을 넣고 다시 4시간 동안 찝니다. 이건 요리음식에 쓰이죠. 마지막으로 여기에 또 햄을 넣고 또 찌는데, 이건 제비집수프나 불도장 같은 고급요리에 씁니다. 육수만 크게 세가지에요.”

몸에 좋은 건재료를 많이 쓰고 두부나 해산물 요리가 많다는 것도 홍연 만의 특징이라고 했다.

건재료는 생 것에 비해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소가 높아지므로 홍연에서는 재료를 말린 뒤 이를 다시 불려서 쓰고 있다. 해삼, 전복, 생선부레 등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홍연에서는 건전복을 만드는 방법은 물론 건전복을 다시 불리는 것 역시 다른 곳과 차별화된다고 했다. 또 광동요리가 해산물 위주인 만큼, 튀기기보다는 찌는 해산물 음식도 홍연에 많은 편이다.

정 주방장이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식재료는 두부다.

“두부가 한국에서는 싼 식재료로 인식되고 있어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등에 손쉽게 들어가는 재료로요.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두부가 고급요리에 쓰입니다. 홍연에서는 두부를 직접 만들고, 계란이나 시금치도 넣어보고 냉채를 만들 때도 두부 안에 오리알을 넣어 두부냉채를 만드는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어요.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두부가 한국에서도 고급요리에 쓰였으면 하는데, 솔직히 고객들 반응은 아직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두부요리 중심의 특색있는 작은 중식당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도 내비쳤다.

거부감과 실패를 극복하다=홍연에서의 10년 주방장 생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은 호경전이 홍연으로 바뀐 초기였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육수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지녀 애를 먹기도 했다.

“기존에는 닭육수를 쓰다가 육수가 돼지고기 육수로 달라지니까 처음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는 고객 분들이 많았어요. 광동지역의 요리를 내세운 만큼, 광동 돼지고기 다리를 말려 우려낸 육수가 홍연 모든 음식의 기본으로 쓰였죠. 손님들에게 새로운 돼지고기 육수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면서 거부감을 점차 줄여 나갔습니다.”

작은 실패(?)도 있었다. 광동요리와 함께 딤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홍연이 만들어진 만큼, 수준급의 딤섬요리는 이 곳의 자랑거리다. 딤섬 전문셰프인 황티엔푸 셰프는 호경전 시절부터 홍연까지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간이 센 오리지널 딤섬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오픈 초기 딤섬 중심의 디저트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2008년 당시만 해도 한국에 딤섬문화가 없었어요. 야심차게 딤섬을 내세운 만큼, 오후 2시30분부터 5시까지를 딤섬과 차를 파는 시간으로 만들었는데, 손님이 거의 안오더라구요. 별도의 ‘딤섬카트’까지 제작해 딤섬을 디저트로 먹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딤섬은 여전히 식사메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결국 약 1년만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비록 딤섬을 디저트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무산됐지만, 딤섬과 탕수육은 홍연에서 가장 잘 팔리는 대표메뉴가 됐다. 그는 홍연의 탕수육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홍연의 탕수육은 쫄깃쫄식하지만 찹쌀을 전혀 안넣어요. 전분을 물에 담궈서 물이 스민 뒤 냉장고 넣어뒀다가 고기와 함께 튀깁니다. 계란과 밀가루, 기름을 전혀 안쓴다는 것도 특징이죠. 식기 전에 빨리 먹어야 쫄깃한 탕수육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정 주방장의 철칙 세가지=그가 주방가족 14명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세가지다.

첫째는 주방에서는 거짓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재료가 없으면 없다고 얘기하고, 나쁜 재료를 쓰면 안된다. 나쁜 재료는 무조건 버리고, 좋은 재료로 손님을 대하자고 얘기한다.

레시피를 꼭 지키라는 것도 그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다. 육수를 끓일 때도 양을 꼭 지켜야하는데, 그래야 맛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 주방장은 매일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서 직접 육수를 끓인다. 다른 건 몰라도 육수가 모든 음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베이스가 되므로 다음날 쓸 육수를 6시간씩 끓이는 일을 매일 챙기고 있다.

셋째는 직원들에게 국내든 해외든 많이 나가서 보고 맛보고 공부하고 체험하라고 강조한다. 일반식당이든 특급호텔이든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을 가보고 맛보고 체험을 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홍연이 아무리 바빠도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직원들을 다 내보냅니다. 물론 휴가철에도 각종 체험을 할 것을 독려합니다. 지난 10년간 고객들의 입맛이 많이 달라지고 또 높아졌다는 걸 느낍니다. 여기에 걸맞게 홍연도 발전해야겠지요. 저 혼자 만의 노력으로는 안되고, 주방직원 모두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시도를 해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죠.”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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