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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수능 연기가 남긴 단어, ‘우리’
뉴스종합| 2017-11-25 09:20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지나가자 여고생들이 한껏 소리를 내질렀다. 휴대폰을 꺼내 들기 바쁘고, 복도에 가득 찬 학생들로 이동조차 쉽지 않았다.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방한했을 당시, 철의 여인 같던 여사를 미소 짓게 했다며, 당시 여고생들을 향해 ‘급식외교’란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여고생 특유의 즐거운 소란은 이날도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사진 = 연합뉴스]

그로부터 얼마 후. 문 대통령은 포항여고 고3학생을 만났다. 전날 수능을 마친 이들이다. 불과 9일 전엔 집이 흔들리고 자동차가 박살 나고 땅에 금이 갔던, 그 현장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일주일간 한 손엔 펜을, 한 손엔 생수를 들었다. 자원봉사자인지 이재민인지 수험생인지 본인조차 헷갈려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학교가 떠나갈 듯 웃었던 그 여고생들 앞으로 담임 선생님이 지난 수능의 소회를 밝혔다.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수능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결정을 내려준 정부 관계자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생각, 현장 상황을 최우선으로 해준 것에 대해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느덧 미소가 사라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학교가 떠나갈 듯 웃었던 여고생들은, 곳곳에서 울먹였다. 잠시 잊었겠지만, 지난 9일의 트라우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소란과 환호, 그리고 떨림, 눈물. 포항여고의 고3학생들은 모든 감정에 솔직했고, 문 대통령도 그대로 아이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이후 문 대통령이 답을 했다. 그대로 옮겨 본다.

“순방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속에서 지진 소식을 들었는데, 가장 큰 걱정이 수능이었죠. 수능을 연기한다는 건 너무나 중대한 일입니다. 왜냐면 수능일이 미리 고정돼 있고…(중략)나라 전체가 수능 일정에 맞춰 있는 상태입니다. 수능 시험을 변경하면 그 자체로 굉장히 큰 혼란이 생겨나거든요.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게 되고요.

전체 수능 수험생이 한 59만명 정도 되는데, 포항지역이 1%가 채 안 되죠. 그래서 처음엔 정부에서도 수능을 연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만에 하나 지진 때문에 수험장이 불안한 상태가 되고 여진이라도 일어나면 1%가 채 안되는 포항 학생들은 시험을 못 치게 되거나 불안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그래서 학생 안전에 문제가 있고, 잘못하면 불공정한 결과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죠.

전체 학생이 다 중요하지만, 1% 학생의 안전, 그리고 공정함, 이런 것들을 위해 연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마웠던 건 나머지 많은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불평할 만했잖아요. 왜 포항 때문에 연기해야 하느냐고. 그런데 거의 대부분 국민, 학부모, 수험생들이 연기 결정을 지지해주고 또 오히려 포항 학생들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주셨거든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우리 국민 마음 속에 대한민국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소수자와 함께 배려해나가는 그런 것이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우리 미래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포항여고 학생들도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텐데, 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 소수자, 나눔, 이해, 공정. 문 대통령 발언의 키워드다. 다수의 우리가 소수의 당신을 위해 조금 이해하고 양보하는 세상. 지난 일주일은 이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잊고 있었던 이 가치를 되살렸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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