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
[라이프 칼럼-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삶터·일터이자 ‘치유의 쉼터’ 전원
뉴스종합| 2017-12-05 11:18
지난 2010년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한 필자 가족의 농지 맨 위쪽에는 작은 소나무 숲이 있다. 10여년 된 소나무 40여 그루가 들어서 있는데, 앞서 땅 계약 당시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는 크기가 고작 두세 뼘에 불과한 새끼 소나무였다.

애초 수백그루의 소나무 가운데 40여 그루만 남겨진 데는 사연이 있다. 이전 땅주인이 한꺼번에 조경업자에게 팔았는데 “작고 못생겨 상품성이 없다”며 그대로 남겨졌다. 필자는 버림받은 소나무들을 옮겨 심거나 베어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냥 두었다. 나중에 틀림없이 보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래서 일까. 지금 이 작은 소나무 숲은 사시사철 늘 푸른 생명에너지를 우리가족에게 선물한다. 몇몇 큰 나무는 하늘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것. 해마다 약술이나 효소 원료로 쓰이는 솔잎ㆍ송순ㆍ송화ㆍ솔방울 등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효자나무’다.

2~3년 전부터는 소나무 숲 주변에서 새끼 소나무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올 초봄에 새끼 소나무 10여 그루를 집 주변과 마당가로 옮겨 심었다. 그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이 크다. 집 뒤편 낮은 경사지에 자리 잡은 두 뼘 크기의 새끼 소나무는 특히 애착이 간다. 이 소나무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가 발아한 것으로,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었다. 경사지에 깔아놓은 비닐류의 덮개 틈새를 비집고 나온 데다 수차례 예초기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았으니, 볼 때마다 오묘한 생명의 신비를 느끼곤 한다.

새끼 소나무들이 어엿한 성목이 되려면 10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기간 동안 필자 가족은 어린 소나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하면서 늘 푸른 생명에너지를 얻을 것이다.

비단 소나무만이 아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든 나무가 생명에너지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지난 늦여름 과수밭의 풀베기 작업을 하던 중 아차! 하는 순간 작은 사과묘목의 몸통을 싹둑 잘라버렸다. 가망이 없을 것 같아 아예 포기했었는데, 늦가을의 어느 날 가보니 잔가지를 뻗어 푸른 잎사귀를 낸 것이 아닌가! 이 사과묘목만이 아침 최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지금까지도 잎사귀의 푸른 기운을 간직한 채 서있다. 몸통이 잘린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강한 생명력은 경이 그 자체다. 마치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난 살 거야! 아무렴 난 죽지 않아! 난 커서 반드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거야!”

이렇듯 나무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생명력은 바로 ‘자연의 힘’이다. 이는 발아하는 생명의 신비로부터 시작해 약동하는 기운, 그리고 그 이후의 성장과 결실까지를 포함한다. 자연의 힘은 생명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북돋워준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귀농ㆍ귀촌한 이들이 자연의 질서를 신뢰하고 그 리듬에 맞춰 느리게 살아간다면 언제나 값없이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이 자연의 힘, 생명력이다. 그러나 ‘귀농ㆍ귀촌 50만 시대’라고 하지만 이 생명에너지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생2막 또는 3막의 삶터이자 일터로 전원을 선택했다면, 무엇보다 그곳이 생명력 충만한 ‘치유의 쉼터’라는 사실을 깨닫고 제대로 누려보시라! 그것이 행복한 귀농ㆍ귀촌의 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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