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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조우호 덕성여대 독어독문과 교수]시간을 다룰 수 있는 경제정책
뉴스종합| 2017-12-05 11:18
벌써 한 해의 노을이 저물고 있다. 시간은 돌이켜 보면 항상 빠르게 지나간다. 인간은 시간을 의식하고 시간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변화를 의미한다. 특히 유럽에서 근대 18세기 시민사회가 성립한 이후 시간의 흐름인 속도는 시대의 대표적 언어가 되었다. 20세기 현대의 시간이 자동차와 정보통신 혁명으로 더욱 빨리 갔다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초연결사회로 진행되는 21세기 초반에는 시간의 흐름이 혁명적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면 변화도 빨라진다. 인간의 생활방식도 시간의 변화만큼 빨라질 것이다. 현대인의 운명은 이런 시간의 변화를 항상 등에 업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또 다른 소설 ‘느림’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느림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고 묘사했지만 현대인이 그것을 귀담아듣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쿤데라는 인간이 시간의 지배를 덜 받고 시간을 조절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시간은 다룰 수 있는 존재에게는 빠르게만 아니라 느리게도 갈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현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경제도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경제가 인간 활동의 결과인 점에서 당연하다. 수요가 증가하고 생산이 늘 때가 있고, 소비가 위축되고 성장이 떨어질 때도 있다. 인플레가 문제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특정 분야의 일자리가 늘어날 때가 있고 특정 실업률이 올라갈 때도 있다.

경제 전체로 보면 그것은 시간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일 수 있다. 경제의 변화는 경기의 순환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점에서 호경기와 불경기를 인간의 신체 리듬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신체의 리듬을 유지하듯 경제의 전체적 흐름을 유지하고 시간에 따른 경제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처하는 것은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인간의 몫이다. 경제정책과 그 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으며, 경제정책의 담당자들이 시간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그렇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경제정책이 경제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그 정책이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제정책이 실패하는 많은 경우는 첫째, 정책에서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책에 따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정책 기조와 디테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을 때도 그렇다.

정책의 신속한 반응과 지속성의 유지는 서로 모순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신체의 비유를 보자. 갑작스런 신체의 고열에는 해열제의 신속한 투여가 필요하다. 열이 가라앉으면 고열의 원인을 찾고 그 원인에 따라 고열이 재발되지 않도록 지속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발열 원인에 대한 조사와 그에 대한 지속적 후속조치가 없다면 어쩌면 해열제에도 듣지 않는 치명적인 고열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국가경제의 현실에는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나 위기상황이 발생한다. 경제정책은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골든타임도 존재할 수 있다. 그 시간을 넘기면 경제는 회생불능이거나 적어도 지독한 후유증을 겪을지 모른다. 신속함 이후에는 그 원인을 찾아 전체 경제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다양한 작은 정책들을 일관성 있게 지속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상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제정책의 신속성이던 지속성이던 모두 가능하게 하는 열쇠는 경제 현장에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 일자리 창출, 법인세와 소득세의 인상 논란 등은 모두 경제 현실의 변화에 대한 판단과 그 처방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판단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 판단의 답은 경제의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현장에 상주하며 현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필자 나름의 일차적 평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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