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현대미술의 세대 뛰어넘는‘캔버스 밖 실험’
라이프| 2017-12-11 11:37
임충섭 화백 ‘단색적 사고’展
순수한 조형적 실험 위한 종착지
변형된 캔버스 작품 등 30점선봬

이우성 작가 ‘당신을 위해…’展
걸개그림에 담은 88만원세대 고민
첫 개인전…위트 넘치지만 묵직함

현대미술작가에게 ‘캔버스’란 평생의 동반자기도 하지만 때로는 벗어나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이 사각의 틀 밖에서 평면예술을 고민하는 두 작가가 나란히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메이저 갤러리에서 전시중이다. 30대의 젊은 작가와 70대 거장의 작업은 분명 그 결이 다르나, 세대를 뛰어넘는 공통점도 있다.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임충섭, 무제 - 돌이 되기 위해 015-12, 1973, Acrylic, U.V.L.S gel and wax on canvas, 59.5×71cm [제공=현대화랑]

캔버스의 탈옥자, 임충섭 화백=삼청로 입구의 현대화랑에서는 임충섭(76) 화백의 개인전 ‘단색적 사고’가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1970년대와 80년대 사이 미국에서 제작한 회화 20점과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변형된 캔버스 작품 10여점이 선보인다. 특히 초기회화 20점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구작은 2층에, 근작은 1층에 위치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작품을 만나다 보면 평생을 “캔버스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쳤던 임 화백의 예술세계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층의 ‘흰색 작업’이다. 임 화백의 대표작인 구부러지고 변형된, 뒤틀린 하얀 캔버스가 인상적인 연작들이다. 천정의 조명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흰색은 분홍, 초록, 주황, 빨강, 노랑 등 다층적 색으로 분화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임 화백은 “흰색은 수만가지 색을 품은 색”이라며 “순수한 조형적 실험을 위한 최근의 종착지”라고 설명했다. 


하얀 캔버스에서 도망쳐 나오려 조각처럼 울퉁불퉁한 평면작업도 해보고, 추상회화를 넘어서 설치, 오브제, 영상으로 작품영역을 확장했지만 결국 종착점은 다시 흰색인 셈이다. 그러나 처음의 흰색과 최근의 흰색은 분명 같지 않다. 단색화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화의 극단적 줄임을 담은 ‘줄임미술’이라고 불러달라”는 그의 말에선 자신의 길을 가는 거장의 뚝심이 느껴진다. 전시는 2018년 1월 7일까지. 


이우성, 이 나무를 쓰러뜨리면-빠지지지직 직 쾅쾅, 2017,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수성 페인트, 젯소, 210×210cm [제공=학고재갤러리]

천에 그린 걸개그림, 이우성 작가=88만원 세대 작가인 이우성(34)은 얇은 천에 그림을 그린다. 어떤 공간에든 빨래집게로 ‘턱’ 걸어놓는 그의 그림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걸개그림과 둘둘 말린 족자로 전해져 내려온 민화와도 맞닿아 있다. 구상을 기본으로 하는 그의 표현방식은 서양화의 그것과도 같지만 동시에 전통적 캔버스 회화와 거리를 둔다. 이 위트 넘치는 젊은 작가 이우성의 개인전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가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신관에서 열린다. 그간 개인전은 수차례 열였지만 갤러리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저에게 사람은 모든 것이 표정이고 메시지다. 그걸 그림으로 옮기는 게 제 작업이다.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 다시말해 우리가 서로 연결된 끈이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우성, 우연히 이렇게 넷이 모였고 술도 마셨다, 2017,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젯소, 210×210cm

전시장에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자리잡았다. 그들은 불안한 상황에 맞서기도 하고(이 나무를 쓰러뜨리면-빠지지지직 직 쾅쾅),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기도 하지만(첨벙 첨벙) 기본적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우연히 이렇게 넷이 모였고 술도 마셨다). 얇은 천 처럼 가볍게 그려냈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젊은 작가의 고민이 위트있게 도드라진다. 전시는 2018년 1월 7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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