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프리즘]일자리안정자금이 뭔가요?
뉴스종합| 2018-01-10 11:07
새해들어 지인의 자택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이 붙었다. 경비원들의 근무시간 조정을 알리는 내용이다. 변경된 근무 스케줄에 따라 중식시간 2시간, 석식 1시간 30분, 심야휴식 6시간 등 총 9시간40분의 휴게시간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안내문에는 친절하게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라는 문구까지 담겼다.

최저임금 인상 이전 경비원들의 휴게시간이 궁금해진 지인은 경비원에게 변경 전 휴게시간이 몇 시간이었는지를 물었지만, 끝내 답을 꺼렸다고 한다. 경비원 입장에서는 괜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논란거리가 생길까 걱정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니, 어쩌면 관리사무소나 인력파견업체 등 사용자 측에서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근로시간 단축이나 임금 변동 등 예민한 부분에 대한 대한 일체의 함구령을 사전에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대와 우려 속에 최저시급 7350원 시대가 지난 1일부터 현실로 다가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첫 발을 뗀 것이다.

지난해 7월 15일 사용자측의 반발 속에 최저임금위원회는 16.4%라는 역대 최대 인상을 의결했다. 곧장 경제계와 중.소상공인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인건비 부담의 증가로 있는 인력도 줄여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새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이 출항부터 삐걱거릴 위기에 놓였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폭을 지원해주는 ‘일자리안정자금’ 2조9000억원을 부랴부랴 대책으로 내놨다. 하지만 사기업의 임금을 재정으로 보전해준다는 논란은 둘째 치고, 시장은 정부가 기대하는 대로만 움직이진 않았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출근을 늦추거나 휴식을 늘리는 방식으로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정식 인력 대신 단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엔 본인이나 가족의 품을 팔아 인건비를 줄이는 등 고육책을 쓰고 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정부는 3월말까지 편의점, 주유소, 음식점, 아파트ㆍ건물 관리업 등 5개 업종 5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여부를 점검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이미 정부가 계획한 궤도를 벗어난 정책이 의도대로 제 자리를 찾게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인은 자택 아파트 경비원에게 ‘일자리안정자금’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도 물었다. 답은 “그게 뭔데요?” 였다고 한다. 일자리안정자금이란 게 고용주가 의지를 갖고 신청하지 않으면 피고용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정부당국이 이를 정착시키기 위해 1명이라도 직원을 고용한 모든 사업장의 최저임금 단속하기엔 시간도, 행정력도 역부족이다.

정책은 개발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실제 국민생활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더 어렵다는 걸 정부 당국자들도 모를리 없다. 정부가 호기롭게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을 때부터 이같은 부작용은 충분히 감안이 됐어야 맞다. 이를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측하고도 밀어붙였다면 ‘직무유기’아닌가.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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