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혼란과 정책 불신만 키운 가상화폐거래소 폐쇄 소동
뉴스종합| 2018-01-12 11:27
정부가 가상화폐의 투기화를 억제한다면서 내놓은 대책이 되레 혼란을 부추기고 정책 신뢰도만 깎아내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11일 ‘시장 폐쇄’라는 극약 처방을 둘러싼 소동을 보면 이같은 우려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가상화폐 거래가 사실상 투기나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가상화폐 거래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폭탄 선언이다. 게다가 “관련부처 협의가 끝났고, 이미 법안도 마련돼 있다”고도 했다. 아예 대못까지 박은 셈이다.

박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2300만원선을 호가하던 대표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은 15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다른 가상화폐들도 상황은 비슷해 일제히 20~30%가 하락하는 폭락세를 연출했다. 정부가 시장을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데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혼란이 확산되고 비난이 쏟아지자 급기야 청와대가 나섰다. “법무부 방안의 하나일 뿐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고 서둘러 밝혔고, 이내 사태는 수습됐다.

더 이상의 혼란과 투자자 원망은 면했는지 몰라도 이날 소동으로 정부의 정책 신뢰도는 치명적 흠집이 나고 말았다. 더욱이 개인 재산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은 사전에 충분한 정부 내부 조율을 거쳐 공개돼야 한다. 하지만 박 장관의 가상화폐 관련 대책 발언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청와대 발표가 사실이라면 박 장관은 분명 경솔했다.

문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의 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실제 입법 단계까지 왔다면 이미 정부 부처간 협의를 마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청와대도 모를리 없다. 그런데도 이를 사실상 부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것은 당장의 투자자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즉석에서 정책을 급변경한 것이다. 가상화폐 투기화도 걱정되지만 정부 정책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더 불안하고 안타깝다.

가상화폐 거래가 투기화되고 시장은 도박판이 돼가고 있다는 지적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잠도 자지 않고 하루종일 가격 동향만 쳐다보는 ‘가상화폐 좀비’가 수백만에 이를 정도다. 더욱이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가상화폐는 긍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투기는 잡되 미래 기술은 살려 가려면 한결 정교한 정책이 요구된다. 무작정 틀어막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래소 인가제 도입 등 투자자 보호장치와 세제 문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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