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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카페]100년전 양반남성은 밥 혼자 먹었다
라이프|2018-01-12 11:41
주영하 교수 한국인 식사방식 탐구
조선초 숟가락 술잎은 버들잎 모양
양반다리로 앉아 식사는 퇴계서…
국있어야 밥 먹는 문화도 사라질것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불편한 양반 다리로 앉아서 찌개를 같이 떠먹으며, 술잔은 돌려야 제맛이라는 한국인의 식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외국인 눈으로 보면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교수가 한국인의 식사방식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추적한 한국식사문화사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휴머니스트)를 펴내 이런 의문에 답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다음 해인 1949년 8월 문교부에서는 ‘국민 의식생활 개선’을 위한 실천 요강 몇 가지를 내놓았는데, 그 중에 ‘가족이 각상에서 식사하는 폐를 없애서 공동식탁을 쓸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여기에서 ‘각상’은 개다리소반 같은 소반을, ‘공동식탁’은 교자상을 일컫는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에서)


한국음식의 기원에 관한 책은 여럿이지만 식사방식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 음식문화사는 처음이다.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 왜 양반다리로 앉을까? 식탁이 있는데 아파트마다 교자상이 있을까? 왜 식사 후에는 꼭 커피를 마실까 등 외국인이라면 가질 만한 의문의 시각으로 하나하나 파헤쳐 나간다.

한국인의 식사문화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음식을 모두 차려 놓고 함께 먹는 문화는 사실 오래지 않다.

100년 전만해도 양반 남성의 상차림은 음식이 모두 차려진 소반에 혼자 앉아 먹는 ‘개별형+공간전개형’이었다. 다만 간혹 손님이 많을 경우에는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에 겸상을 했다. 때로 두레상에 둘러앉듯 하나의 식탁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경우 자신의 앞에 음식만 먹는 게 식사예절로 통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과 함께 위생이 강조되면서 ‘개별형+공간전개형’이 자리잡았지만 한국은 식민지와 한국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공통형+ 공간전개형’이 한국의 식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류붐과 함께 이런 식사법은 한국 음식문화의 특징으로 부각된다.

그렇다면 음식을 담는 스텐그릇이 언제부터 우리 식탁을 지배하게 된 걸까.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랑한 그릇은 놋그릇이었다. 그러나 구리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놋그릇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몇 안되는 광산에서 구리를 모두 채굴에 사찰의 범종을 만드는데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구리로 만드는 엽전도 공급량이 부족해 곤란을 겪을 정도였다.

영조 27넌, 1751년에는 수안, 영월, 보은 안변 등지에서 광산이 개발돼 엽전용 구리 제련을 시도했는데 지배층의 일부가 엽전을 녹여서 놋그릇을 만들자 놋그릇 금지령이 내려졌다. 곤장 100대를 맞는 중형에도 엽전으로 놋그릇 만들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19세기에 오면 집집마다 갖추게 된 그 많던 놋그릇은 다 어디간 걸까. 일제강점기간 전쟁물자로 놋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땅에 묻었던 한국인들은 1960년대 중반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이 나오자 일거에 놋그릇을 고물상에 내다 버렸다. 녹이 슬지 않고 관리가 편한 스텐그릇은 산업화의 시대정신과맞물려 대환영을 받았다.

스텐 공기가 식그릇의 표준이 된 데는 수급이 불안정했던 정부의 쌀 소비 정책과 관련이 있다. 1973년 서울시장은 표준식단을 제시하고 대중식당에서 반드시 스텐밥공기를 사용하도록 하면서, 공기의 사이즈까지 지침을 내렸다.

숟가락의 모양새도 지금과 달랐다. 조선 초기에만 해도 숟가락은 술자루가 휘고 술잎이 버들잎 모양이었다. 저자는 이런 술자루가 곧아지고 술잎이 원형이 된 때를 기존의 학설과 달리 17세기 이전으로 본다. 15세기경부터 양반 남성들은 독상에서 혼자 식사를 했기 때문에 굳이 휜 숟가락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란 판단이다. 짧고 곧은 숟가락이 밥을 먹기에 편하고 현미나 보리로 지은 밥을 많이 먹으면서 술잎이 넓은 숟가락이 더 좋았을 것이란 얘기다.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하는 문화는 저자에 따르면 ‘꺽음집’형태와 온돌에 이유가 있다. 각 방과 마루가 연결돼 있고, 신발을 벗고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자리에 고정된 무거운 식탁과 의자 없이도 따뜻한 방 안에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사할 때의 앉음새인 양반다리라 불리는 책상다리가 양반들 사이에 표준이 된 건 퇴계의 공이 크다. 불교의 가부좌와 비슷한 앉음새인 양반다리는 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퇴계가 주자의 예를 들어 해석함으로써 선비의 표준 자세로 공인된다.

주 교수는 이 책에서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 실기, 문집 등을 두루 살피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변의 아시아 국가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의 식사 방식을 비교해 한국인의 식사방식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됐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이와 함께 식문화의 변화도 예고했다. 한식음식점도 이제는 서양식의 입식으로 바뀌고 있으며, 식탁의 형태가 교자상에서 서양식 식탁으로 변하면서 주요리 위주로 바뀌는 게 그것. 이와함께 밥, 국, 반찬의 식사방식도 붕괴될 것으로 봤다. ‘함께 식사’의 전통적인 식사 문화도 ‘혼밥’현상으로 달라지고 있다. 오래된 식사방식을 고수하기 보다 한국의 현실에 맞추어 맛과 건강에 어울리도록 만드는게 숙제라고 주 교수는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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