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재해
[종로 여관 방화 참사]“가난해서 죽은 것, 남 일 같지 않아”…달방 사람들의 한숨
뉴스종합| 2018-01-22 10:01
-화재 서울장, 보증금 없이 월40만원 투숙자 많은 곳
-2평 남짓한 작은방…“서울장은 가장 열악한 곳”
-“범죄 막을 힘 조차 없어… 가난해서 죽은 사람들”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불 나면 다 죽을 걸요.”

지난 20일 화재로 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종로의 서울장 여관 인근 한 여관에서 24년째 ‘달방’ 생활을 하고 있는 70대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달방은 월세 보증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허름한 여관에서 선불로 객실요금을 내고 일정기간 머무는 장기투숙을 말한다. 서울장 여관은 보증금 없이 월 40만원~45만원, 하루 1만 5000원 꼴을 내고 장기간 머무는 투숙객이 많았다. 그는 이웃 여관 사정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서울장은 여기 여관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이었다. 3층이 가건물인데다, 뒷문도 없고 옥상으로 가는 비상구조차 없어 불 나면 빠져 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며 “거기 사는 사람들 모두 없이 살아서, 돈이 없으니까 죽은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생활이 조금이라도 풍족했으면 독립적으로 방 얻어서 살았겠지. 돈이 없어서 이런 곳에 산 거다. 그 불 낸 놈도 허름한 여관이니까 불 낸 거 아니겠나?”고 했다. 

지난 20일 화재가 난 종로 여관 근처의 한 여관. 장기투숙방이 있다는 광고가 붙여있다. [사진=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21일 오후 찾은 종로5가역 뒷골목에는 서울장 여관처럼 장기투숙객을 받는 여관이 여러 곳 있었다.

서울장 여관 인근 비좁은 골목 사이에 위치한 한 여관에는 ‘장기 월세방 있습니다’라는 종이가 붙여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냉기와 함께 알 수 없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복도 입구에 반쯤 열린 문틈으로 2평 남짓한 작은 방이 보였다. 침대 하나, 작은 냉장고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공간이었다. 침대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서울장은 이보다 더 열악했을 것이라고 이웃들이 말했다.

인근 여관에서 달방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게 이번 화재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서울장 화재의 사상자 중에는 장기투숙객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 10명 가운데 3명이 장기투숙객으로 확인됐고 이중 2명은 2년 전부터 투숙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그들에게 이들의 죽음은 얼굴은 몰라도 형편은 알만한, 가까운 이웃의 죽음과도 같았다. 근처 여관에서 10년 가까이 달방 생활을 하고 있는 김모(69) 씨는 “사연은 제 각각일지 몰라도 갈 곳 없는 사람들일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인근 여관의 객실 모습. 2평 남짓한 방에 침대 하나와 냉장고가 놓여있다. [사진=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다른 70대 남성 장기투숙객은 “여기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은 재기의 의지까지 잃어버린 아주 어려운 사람들”이라면서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여관에서 달방 생활을 한지 20여년이 넘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들을 볼 용기가 안나 집을 나왔다. 그는 “원래 가장이 돈을 못 벌면 권위를 잃는다”며 “다들 한 때는 잘 살았을 사람들이다. 나도 한 때는 삐까번쩍하게 잘 살았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인근 여관 주인들도 마음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서울장 투숙객 중 아는 손님이 있었냐고 묻자 한 여관 주인은 서울장 여관에 갈 뻔 하다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부부 얘기를 꺼냈다. 주인은 “여기서 장기 투숙하는 부부가 원래 서울장에 가려고 했다더라. 가장 싼 곳을 찾으려 보니 주변에서 우리랑 서울장이 싸다고 했다는 거다. 운 좋게 여기 와서 그 참사를 피한거지, 안 그랬음 지금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웃 여관 손님의 끔찍한 비극이 완전히 딴 세상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30여 년 간 여관을 운영했다던 그는 허름하고 오래된 여관은 늘 범죄에 노출돼 있다고 토로했다. 술 취한 손님이 여관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일은 일상이고 돌을 던지거나 유리창을 깨는 일도 자주 있다. 오래된 여관에는 방범시설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여관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달아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언제부턴가 여관을 지키는 게 두렵고 불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을 쓸 돈이 없어 여관을 24시간 홀로 운영하는 그에게 스프링쿨러나 폐쇄회로(CC)TV 등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화재가 난 서울장 여관의 모습. [사진=정세희 기자 say@heraldcorp.com]

이 여관에도 현재 월 40만원에 장기투숙을 하는 사람들이 7명이 살고 있다. 이중 3명은 이곳에 산 지 20년이 넘었고 4명은 비교적 최근인 1~2년 전 들어왔다. 이들에게 여관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유일한 삶의 터전이었다. 여관 주인은 손님들 안전을 위해 방에 자물쇠도 설치하고 소화기도 자주 갈아주지만 작정하고 들어온 나쁜 사람은 못 막는다고 했다. 그는 “이 동네에는 방화범뿐만 아니라 별의 별 사람들이 많다. 늘 문이 열려있는 허름한 여관은 제일 만만한 곳이다. 그래서 늘 범죄에 노출돼 있다. 112에 신고도 여러 번 해도 막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 참사로 달방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 여관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변 여관 대부분은 20~30년된 오래된 건물들이다. 3년째 근처 여관에서 장기투숙을 하고 있다는 60대 한 남성은 서울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재수가 없어서 죽은 게 아니다. 가난해서 죽은 것”이라고 했다.

say@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