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언덕 위의 하얀 집…故 황병기 명인을 기리며
뉴스종합| 2018-02-07 11:18
십수 년전, 황병기 명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아! 이런 곳이구나’ 하고 세 번 감탄한 적이 있다.

우선, 그 곳이 대학시절 종종 올랐던 학교 도서관 뒷산에서 빤히 내려다 보던 동네라는 사실이었다. 솔나무 길이 청량하고 한적해 산책하기 좋았던 그 길 어디쯤엔가 앉아 내려다본 북아현동 꼭대기 하얀집이 선생의 집이었다. 그렇게 바라봤던 저 쪽에서 올려다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곳이 저렇게 보이는구나’ 자꾸 돌아보았다.

그 집에서 느낀 또 다른 놀라움은 ‘고요’였다. 창문을 열어놔도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흡사 절간과도 같아 소음에 익숙했던 귀가 멍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대가 높다보니 세상의 온갖 소리가 일정 높이 이상 올라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소리의 장인에게 고요는 현의 노래를 그려낼 도화지와 같았을 게다. 그는 음악보다 조용한 걸 더 좋아했다. ‘사운드(sound)보다 사일런스(silence)’라나.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 집의 내부 구조였다. 그런 집은 처음 봤다.

집은 2층으로 돼 있는데 흔히 현관을 통해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마치 다른 가구가 세들어 살듯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현관 밖으로 나 있다.

1층은 부인인 작가 한말숙 씨의 공간이고, 2층은 황 선생이 사는 공간이다. 2층은 연습실과 서재 겸 음악감상실, 간단한 음식을 할 수 있는 부엌이 딸려 있다. 실제로 사용하는 부엌이다. 그렇다고 그가 딴 살림을 차렸던 건 아니다.

이 집의 비밀은 1층과 2층 사이에 뻥 뚫린 커다란 구멍에 있다. 이 구멍을 통해 급한 의사소통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서로 던지고 받는다. 정말 위트있는 집이다. 도대체 선생은 왜 이런 이상한 구조를 만들었을까?

그는 이런 집 구조를 부인과 자신을 위한 거리로 봤다. 두 개의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려면 일정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혁명적인 음악세계를 펼친 황 선생이 연애에서도 앞서갔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60년대부터 ‘자기’라는 말을 썼다며, 원조임을 주장했다. 부부는 대등한 관계여야 하고 친구처럼 사는 게 좋은 부부관계라는 자신의 이상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게 바로 그 별난 집이었던 셈이다.

혼자 독거하는 2층은 사실 창작의 공간이기도 했다. 잘 길들인 듯한 가야금 대여섯 대가 벽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서 있어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공간은 정갈하고 고요했다. 그는 그 곳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가야금 연습을 했다. 정해 놓은 시간 없이 내키는대로 때로 몇시간이고 연습하고 곡을 만들었다.

황 명인은 평소 논어를 좋아해 문장을 따로 모아 외출할 때마다 품에 지니고 틈틈이 읽었는데, 후에 논어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그 중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란 구절을 가장 좋아해 곱씹었다. 그는 거기에서 강요하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를 봤다. 황병기 예인의 삶은 바로 그러했다. 자유롭고 경계를 넘나들었던 고인의 삶과 예술을 잠시 돌아봤다.

mee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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