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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탐색]‘직장 내 성희롱 진단 앱’ 써보니…뻔한 질문, 실효성 의문
뉴스종합| 2018-02-17 09:01

-노동부 개발 앱, 변별력에 문제…예방법 등 없어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욕설이 특정 성을 비하하고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없다?’

이 질문은 고용노동부가 개발한 직장 내 성희롱 자가진단 앱 중에 나오는 문항 중 하나다. 특정 성을 비하하는 욕설이 성희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애플리케이션 안내 화면 [앱 캡처]

17일 고용노동부가 최근 만든 ‘성희롱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사용해 본 결과 대부분 정답을 유추할 수 있어 변별력을 가리기 어려운 문항이 대부분이었다.

이 앱은 지난해 고용부가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 근절대책 후속조치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국민인지도 향상을 위해 지난 13일 출시됐다. 현재 약 500명이 사용한 상태다.

▶도덕 시험 문제와 유사…좋은 것만 찍어도 평균 이상= 앱을 다운 받으면 ‘조직 구성원 스스로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된 지식, 태도, 행동방식 등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자율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개발했다’는 문구가 가장 먼저 뜬다.

자신의 성희롱 지식, 태도 등을 스스로 점검하게 해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겠다는 게 주요 목적인데, 진단 문항을 보면 과연 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체크 리스트는 ‘성희롱 판단력’과 ‘성인지 감수성’ 두 가지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의 문제. [앱 캡처]

판단력 영역은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지 여부를 가려보는 등 지식을 점검하는 파트다. 그러나 도덕 교과 시험을 보는 것처럼 뉘앙스만 보고도 정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적 농담을 하는 것은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회식자리에서 성적 농담을 던지는 게 성희롱이 될 수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성희롱은 실수이므로 직장 내 성희롱은 문제제기 할 수 없다’라는 문항도 마찬가지다. 성희롱 횟수가 1번이라고 해서 회사에 문제제기 할 수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이상하다고 느낄 문장이다.

성인지 감수성 점검 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이 파트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성희롱과 관련된 조직문화 등을 점검하는 문항이다. OㆍX로 답을 내는 판단력 문항과는 달리 1점부터 5점까지 선택할 수 있어 세분화된 평가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 파트 역시 극단적인 질문들이 등장했다. ‘성희롱 피해자가 여성에게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의사소통 기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등 웬만해선 ‘아니다’라고 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제시됐다. 성인지 감수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사람을 가를 수는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진단하기엔 너무 단순한 질문이었다.

▶정답 설명 한 두줄, 예방 방법은 없어= 자가진단 결과를 보여주는 방법도 아쉽다. 성희롱 판단력 문항에 대한 상세설명은 한두 줄에 그쳤다. 일상 속에서 성희롱인지 아닌지 헷갈릴만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면 교육적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점수가 낮을 경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자가진단 점수가 ‘나쁨’이 나올 경우 ‘성희롱 예방 및 발생 시 더 많은 관심과 필요하다’는 메시지만 뜰 뿐이다.

고용노동부가 성희롱 자가진단을 통해 성희롱을 예방하겠다고 밝힌 만큼 성희롱 판단력과 성차별 감수성이 낮을 경우 어떻게 높여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적 콘텐츠도 함께 있어야 했다.

물론 이 앱의 가장 큰 문제는 체크리스트의 정답 찾기가 너무 쉬워 정작 성희롱 예방 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의 질문 수준으로는 성희롱 교육이 시급한 사람도 조직도 ‘문제없음’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성희롱 예방은커녕 자가진단 역시 불가능하다.

성희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고,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질문이 보다 날카로울 필요성이 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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