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雨水가 지나 얼음이 녹으니…봄은 물소리로부터 온다네
라이프| 2018-02-20 11:27
물소리 들으며 걷고싶은 봄 여행지
추읍산 아래 흑천따라 걷는 물소리길
갯벌을 끼고 호젓이 걷는 강화나들길
소풍가기 좋은 평탄한 장성호 호변길
우애 깊던 ‘볏단형제’ 의 느린꼬부랑길


‘봄물 처럼 깊으니라./ 갈산 보다 높으리라./ 달 보다 빛나리라./ 돌 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봄에서 시작해 겨울을 보낸 다음 다시 봄이 오듯,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며 만물의 이치가 돌고 돈다고 했던 만해 한용운은 ‘사랑’을 봄물 처럼 깊다고 했다.

‘봄엔 비도 적고, 장마도 아니며, 태풍도 오지 않고, 그렇다고 눈도 그쳤는데, 무슨 물이 그리도 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詩)적 감성에 부합하기 않거니와 과학적이지도 않다.

늦가을 비(雨)에서 겨우내 뿌린 눈(雪)이 온 산천에 꽁꽁 얼어붙었다가 2월 하순부터 녹기 시작해 춘삼월에 이르면 가뭄이 들어도 계곡 물은 깊어진다.

물 흐른 자국만 남았던 절벽이 폭포로 변하고, 개울에선 돌과 옥수(玉水)의 재잘거림이 이어진다. 19일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雨水)였다. 보름전 입춘은 과도한 희망의 표현이었고, 봄은 우수 뒤에 비로소 ‘본격화’한다. 가을 한로에 왔던 기러기가 떠나는 때이다. 더 몇 일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는 경칩에 가까워지면 초목에 싹이 튼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우수 뒤 얼음같이’ 경색됐던 것을 녹이는 때가 온다.

이봐 이웃들아, 봄물 깊은 춘기발흥 여행을 떠나보자스라.

얼었던 대동강이 녹는다는 雨水. 이제 절기는 우수를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음이 녹아 봄맞이를 준비하고 있으니 이제 슬슬 봄 여행길을 준비해 봄 직하다. 사진은 양평 물소리길 길목에 있는 두물머리.

물소리 듣기=경기도 양평 물소리길 1코스 두물머리는 많이 알려졌기에, 한국관광공사는 봄물과 함께 하는 여행지로 4코스를 추천했다. 펑퍼짐한 추읍산 아래 흑천을 따라 동서로 걷는 길이다. 원덕 기차역에서 용문역까지 6.2㎞의 짧은 길엔 논두렁과 철길, 구판장이 있는 마을, 레일바이크 등 다양한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있다.

세조 수양과 송강 정철이 걷던 유서깊은 길로 어수물(임금이 행차 중 마신 물) 흔적이 남아 있다. 추읍산 아래 들판은 겨울 딸기 재배지인데, 물어보기 무섭게 시식을 권할 것이다. 별내체험마을, 수진원농장, 뱃산교, 다문리를 거친다.

경기도 연천 차탄천 에움길은 차탄교를 출발해 은대리성을 만나기까지 차탄천 협곡을 따라 주상절리 명소들을 두루 거치는 9.9㎞ 산책로이다. 주변 풍광은 감탄스럽다. 협곡 양쪽 벽으로는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가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장관을 펼쳐놓았다. 수평절리까지 관찰할 수 있다.

협곡의 모양대로 땅이 꺼진 원리는 그랜드 캐니언과 유사하지만 규모는 작다. ‘미디엄 캐니언’쯤 되는데, 계곡 바닥은 주변의 평균 지표면보다 20~30m 낮다. 길은 차탄천을 넘나들며 풍경을 바꾸고, 돌다리를 놓아 정겨움을 더한다. 세대 간 꼬인 감정을 푸는 얘기, 지질학적 신비에 대한 토론을 하며 걸어도 좋겠다. 북쪽 연강나루에 가면 두루미떼를 만나는 행운도 얻는다.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갯벌의 낙조를 만날 수 있는 ‘강화나들길’.

바다와 봄물의 해후=서해안 강화는 대한민국 2018년 관광도시로 선정됐다. 나들길 7코스는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갯벌의 낙조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화도초등학교에서 출발해 마니산 줄기인 상봉산 일만보길을 따라 능선을 넘으면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다. 하루 만보 목표는 여기서 단숨에 해결된다.

갯벌을 오른쪽으로 끼고 걷는 길이 강화나들길 7코스의 하이라이트이다. 일몰로 유명한 장화리 일몰조망지를 지나면, 아기자기한 산길을 따라 북일곶돈대에 닿는다. 돈대에서 바라보는 너른 갯벌과 장봉도, 주문도, 불음도 등의 모습이 일품이다. 강화갯벌센터를 둘러본 후에 작은매너미고개를 넘으면 화도초등학교로 돌아온다.

동해안 울산 동구의 동축사는 6세기 인도 왕실로부터 황금을 선물받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동구-북구의 경계에 마골산(297m)이 있는데, 이 산의 동남쪽 골짜기들을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든 것이 옥류천 계곡이다. 실개천이 동행하는 등산은 최고이다. 개울의 재잘거림 때문인지 이 산행로를 ‘옥류천 이야기길’로 이름 붙였다. 동축사길, 소나무길, 소망길, 종주코스 네 갈로 나뉘는데 중심되는 길이 바로 1코스 동축사길이다. 옥류천 계곡을 거슬러 오른 후에 천년고찰 동축사를 거쳐 내려오는 길은 혼자 가도 외롭지 않다. 불어난 봄물이 자꾸 따라오며 말을 건다. 물은 실개천으로 흐르고 모이다가 동해바다와 만난다.

영산강의 가지 물줄기인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생긴 호수 ‘장성호’ 호변길.

내 마음은 호수다=전남 장성군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이 영산강의 가지 물줄기인 황룡강이다. 황룡강은 오래 전부터 장성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강이다. 물이 맑고 물고기가 많아 천렵이나 소풍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황룡강을 상류인 장성읍 용강리에서 막아 생긴 호수가 장성호이다. 맑고 아름답던 황룡강의 옛 풍광이 사라져 버린 대신 커다란 호수를 얻었고, 장성호 선착장부터 북이면 수성마을까지 20리 호변길이 생겼다. 호변길은 평탄하다. 게으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나 가세요”라고 말 못한다.

전자산업의 메카인 경북 구미에도 알고보면 호수와 호변길이 있다. 금오산올레길은 금오산저수지 둘레에 난 길 2.3㎞ 코스다. 물 위에 놓인 데크길이 매력적이다.

금오랜드 앞 백운교에서 출발해서 금오유선장, 경상북도환경연수원 앞, 물 위에 놓인 데크길, 제방길, 물 위에 놓인 데크길, 금오랜드 앞 백운교 순으로 걸으면 된다. 코스가 짧으니, 채미정, 환경연수원, 올레길 전망대 등 주변 볼거리를 다 훓어도 시간이 남는다.

스토리에 발걸음이 절로 간다=꼬부랑 할머니 얘기는 이 스토리를 들으며 컸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가 지금도 21세기 손주들에게 한다. 꼬부랑 할머니는 200여개국에 모두 사는 산타 할아버지 같은 존재라서 배경지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느린 꼬부랑길엔 나름의 옛날 얘기가 많다. 충남 예산의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 이야기 길은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를 지난다.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밤중에 몰래 볏단을 나르다 서로 만난다는 내용의 ‘의좋은 형제’ 교과서 내용을 기억할 것이다. 상중리는 그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에는 백제와 나당연합군 간의 최후결전에 관한 임존성 스토리도 구구절절이다. 외세인 당나라 군대의 배를 묶어 뒀다는 나무가 상중리 마을에 있다. 이런 저런 스토리를 음미하다 보면, 슬로시티방문자센터~관록재들~봉수산자연휴양림~대흥동헌을 거치는 5.1㎞ 길을 어느새 다 걷는다.

전북 군산 구불길 4코스 구슬뫼길의 핵심구간은 군산저수지 연안을 따라 걷는 수변 오솔길이다. 특히 눈 내린 후 걷게 되는 대나무숲 구간은 이곳을 겨울에 걷기 좋은 길로 손꼽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걷기도 쉬운 편이지만 저수지 한 바퀴를 다 걸으려면 5시간 정도 걸리므로 일부 구간만 골라서 산책해도 되겠다.

우동마을~군산저수지~장군봉~바지런철쭉분재원~군산역 등을 거친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두루누비(durunubi.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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