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장에서]골 깊어진 금감원과 하나금융…진흙탕 싸움 피하려면
뉴스종합| 2018-03-13 11:40
금융감독원장이 비리의혹으로 사임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지만 퇴임하는 최흥식 원장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인정했으니 청와대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최 원장의 깔끔한 성품 때문도 작용했겠지만, ‘일자리’를 경제정책의 제일 앞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로서도 ‘일자리의 공정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하지만 최 원장의 사임으로 채용비리 의혹은 오히려 더 커지게 된 측면도 있다.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지주가 김정태 회장 3연임을 두고 갈등을 벌여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사자들은 부인할 지 몰라도, 채용비리는 지배구조를 둘러싼 양측간 대립에 있어 사실상 ’양날의 칼‘이었다.

금감원은 이른바 ’셀프연임‘은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나금융은 내놓고 반박은 안했지만 ’왜 민간기업 인사에 감독당국이 개입하느냐’며 불편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런 양측간 갈등에 불을 지른 것이 바로 채용비리다. 금감원은 지낸해 우리은행 채용비리를 시작으로 KB금융과 하나금융에 대한 2015년 이후 채용비리 의혹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검찰에 넘겼다.

이후 하나금융 이사회는 김 회장의 3연임 추천을 의결했다. 특히 이번 하나금융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는 김 회장 단독이다. 금융당국이 사내이사인 경영임원이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이해상충이라고 하자 이들을 배제한 것이다. 당국은 이같은 하나금융의 반응에 당혹해 했다. 김 회장의 독주체제가 더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회장을 제외한 사내이사가 유일하게 참여하는 위원회가 리스크관리위원회다. 사실 역할이 사리진 경영임원을 이사회에서 배제한 것을 두고 뭐라하기도 어렵다.

오는 23일로 다가온 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의 3연임은 이변이 없는한 가결될 전망이다. 후보추천과정에서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주주들 입장에서는 김 회장의 지난 임기 동안 경영성과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은 하나금융에 대해 채용비리 검사와 지배구조 검사를 예고한 상황이다. 검사결과 문제점이 발견되면 회사는 물론 김 회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자칫 연임이 물거품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최 원장에 대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을 제기한 주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간의 이목은 하나금융에 집중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많은 인사잡음이 흘러나오는 곳이 금융권, 특히 금융지주사들이다. 정권의 탐욕 때문인지, 금융회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인지는 시각에 따라 갈리겠지만, 외환위기 이후 반복되는 현상이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금융 4대 천황‘이란 말까지 등장했었다.

보통 갈등 관계에서 원인은 어느 일방에 있기 어렵다. 갈등이 지속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은행이나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가 정부와 철학을 공유해야한다는,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에 대한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가 아닐까.

공공성을 위해 정책적으로 단일 지배주주를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의 인사와 의사결정이 일반 민간기업과 100% 같아야 한다는 인식도 위험할 수 있다.

상대의 저격에 수장을 잃은 금감원이 예정된 하나금융 검사를 강도 높게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명백히 밝혀야겠지만 분풀이가 되서는 안된다.

하나금융 역시 당국의 권위를 인정하고, 조사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이 만든 법에 의거해 당국이 하는 행정활동에 대해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어찌됐건 당분간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의 행보를 보는 세간의 해석은 ’싸움‘일 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당국과 금융권이 이뤄내야 할 궁극적 목표는 채용비리 근절과 지배구조 혁신이다. 금융회사들이 ’가진자들만의 리그‘라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막강한 권한과 책임에도 불구하고 임명 과정에서 청문회 등 공개적인 인사검증을 거치지 않는 금융감독원장 직에 대한 재고도 필요해 보인다. 지방선거 후로 예상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ygmoo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