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현송월과 조용필 사이
뉴스종합| 2018-04-11 11:26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남한 공연과 남한 예술단의 ‘봄이 온다’ 공연을 보면서 분단 70년 남북의 거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부른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은 ‘선군 정치’에 복무한다는 북측의 음악관에 충실한 노래였다. 흡사 1970~80년대 LP나 카세트테이프에 꼭 한 곡씩 들어 있던 우리나라 건전가요를 연상케했다. 반면 평양 시민들도 남한 가수들의 K팝과 창법에 생경함을 느꼈을 듯 싶다. 록그룹 윤도현밴드가 북한에서도 즐겨 부른다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강렬하고 빠른 비트의 록버전으로 편곡해 들려줬을 때 뜨악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까?. 걸그룹 레드벨벳의 ‘빨간 맛’은 북한 중앙방송이 공연 소식을 전할 때 통째로 들어냈다는 후문이다. 강산에의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노래 ‘명태’는 기이하게 들었을 듯 싶다.

남북 대중 음악은 70년의 간극만큼 이질적이다. 하지만 언어가 같고 기저에 흐르는 전통과 정서가 한 뿌리에서 발원한 만큼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현송월이 애창곡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르며 원곡자인 조용필을 무대로 불러내는 모습에서 그런 희망을 봤다. 화음을 쌓는 두 사람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음악 영재로 자랐고 피아노 등 웬만한 악기는 다 다룬다는 현송월이 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가왕’ 조용필의 음악과 함께 한다면 팝발라드, 록, 디스코, 댄스, 펑크, 랩, 힙합 등 남한에서 유행하는 K팝을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현송월과 조용필이 마주보고 화음을 맞춘 것 처럼 남북의 지도자가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정상회담이 27일 판문점에서 열린다. 이어 5월말 또는 6월초에 북ㆍ미 정상도 얼굴을 맞댄다. 북미정상회담은 초유의 일로 그 자체로 세계사적인 일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꽃피게 하려면 북한 비핵화라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단계별이냐 선폐기냐를 놓고 북ㆍ미간, 그리고 한ㆍ미간 입장이 다른 상황이고 중국의 변수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펴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게중심을 경제로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중국과 베트남을 모방하는 시장화 촉진 정책을 김정은 정권이 실시하기 시작한 증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김정은의 궁극적 목적이 권력유지와 체제 안정이라면 방법은 ‘인민을 잘 살게하는’ 시장화 개혁밖에 없다는 얘기다. 장기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은 선친 김정일과 달리 시장 경제의 힘을 잘 이해하고 중국(등소평의 개혁ㆍ개방), 베트남(호치민의 도이모이)의 성공사례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란코프 교수의 분석이다.

조용필은 데뷔 50주년 무대를 다음달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갖는다. 현송월이 잠실을 찾아 디스코곡 ‘단발머리’, 펑크곡 ‘못 찾겠다 꾀꼬리’를 함께 부르는 상상을 해 본다. 현송월이 마음의 문을 열고 K팝의 다양한 음악을 배우듯 김정은이 폐쇄의 문을 열어 젖히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경제 50년 성장 노하우가 북한과 공유될 것이다.

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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